CHAPTER 5
첫 번째 징조
약 21분 · 8,337자
소영이 무의식적으로 치마 자락을 만졌다. 은팔찌의 경고가 현실이 되는 순간이었다. 은팔찌의 경고가 현실이 되는 순간이었다.
"어서 가보셔야 합니다!" 그녀가 김문수의 소매를 잡으며 다급히 말했다.
김문수는 잠시 망설였다. 소영을 의심하던 중이었지만, 전하의 급보를 무시할 수는 없었다. 그는 소영을 날카롭게 바라보며 말했다.
"따라오지 마라. 이것은 그대가 관여할 일이 아니다."
하지만 소영은 이미 그의 뒤를 따르고 있었다. 김문수가 규장각을 나서자마자 그녀도 조심스럽게 뒤따랐다. 어전까지의 길은 멀지 않았지만, 소영에게는 영원처럼 느껴졌다.
어전 앞에 도착했을 때, 이미 여러 신하들이 모여들고 있었다. 소영은 기둥 뒤에 몸을 숨기고 상황을 지켜보았다. 김문수는 어전 입구에서 잠시 머뭇거리다가 안으로 들어갔다.
"전하, 소신이 왔사옵니다."
어전 안에서 김문수의 목소리가 들렸다. 소영은 숨을 죽이며 귀를 기울였다.
"아, 문수야..."
정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평소보다 훨씬 약하고 떨리는 목소리였다. 소영은 기둥에 등을 기댄 채 입술을 깨물었다.
"갑자기 어지러워서... 눈앞이 흐려지고..."
"전하, 진맥을 해보겠사옵니다."
어전 안에서는 의관들의 분주한 움직임이 들렸다. 소영은 기둥에 등을 기댄 채 주먹을 꽉 쥐었다. 할머니의 은팔찌가 여전히 미열을 띠고 있었다.
잠시 후, 김문수가 어전에서 나왔다. 그의 얼굴은 심각했다. 소영은 그가 지나가기를 기다렸다가 조심스럽게 뒤를 따랐다.
"김 검서관님."
소영이 작은 목소리로 불렀다. 김문수는 돌아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따라오지 말라고 했지 않았나."
"전하의 상태는 어떠하십니까?"
김문수는 잠시 말을 머뭇거렸다. 그의 눈에는 걱정과 의심이 교차하고 있었다.
"...심상치 않다. 갑작스럽게 어지럼증을 호소하시며 식은땀을 흘리신다. 의관들도 원인을 찾지 못하고 있다."
소영이 무의식적으로 은팔찌를 만졌다. 그녀가 역사서에서 읽었던 내용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정조의 갑작스러운 건강 악화, 원인불명의 증상들, 그리고 그 뒤에 숨겨진 의혹들.
"혹시..." 소영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독... 일 가능성은 없을까요?"
김문수의 눈이 크게 뜨였다.
"무슨 소리를 하는 것이냐? 함부로 그런 말을..."
"아니에요. 저는..." 소영이 급히 말을 이었다. "그냥 느낌이... 뭔가 이상해요. 너무 갑작스럽지 않습니까?"
김문수는 소영을 빤히 바라보았다. 김문수는 잠시 말을 잃고 소영을 바라보았다. 소영의 말이 허무맹랑하게 들리면서도, 한편으로는 자신도 느끼고 있던 불안감과 일치했다.
"그대는..." 김문수가 천천히 말했다. "정말 누구인가? 어떻게 그런 생각을..."
"저는 정말 모르겠어요." 소영이 목소리가 떨렸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전하께 위험이 닥치고 있다는 것입니다. 제 말을 믿어주세요."
김문수는 소영의 간절한 눈빛을 바라보았다. 그 눈에는 거짓이 없어 보였다. 하지만 동시에 그녀의 정체에 대한 의문은 더욱 깊어져 갔다.
어전에서 다시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두 사람은 동시에 그쪽을 바라보았다.
"또 무슨 일이..." 김문수가 중얼거렸다.
소영의 은팔찌가 다시 한 번 뜨거워졌다. 그녀는 본능적으로 팔찌를 만지며 김문수를 바라보았다.
"가보셔야 해요. 지금 당장."
김문수가 급히 어전으로 발걸음을 옮기려 하자, 소영이 그의 소매를 살짝 잡아당겼다.
"잠깐만요." 소영이 그의 소매를 더 꽉 잡았다. "검서관님께 꼭 말씀드려야 할 것이 있습니다."
김문수는 걸음을 멈추고 돌아섰다. 어전에서 들려오는 소란스러운 소리가 그의 마음을 조급하게 만들었지만, 소영의 표정에서 범상치 않은 무언가를 감지했다.
"무슨 말인가?"
소영은 잠시 주위를 둘러보았다. 복도는 한적했지만, 궁궐 어디든 귀가 있고 눈이 있었다. 그녀는 김문수를 조금 더 한적한 곳으로 이끌었다.
"전하의 증상이..." 소영이 입술을 깨물었다. "혹시 독... 아니, 그러니까..."
"독?" 김문수의 눈이 크게 떠졌다. "무슨 소리를 하는 것인가?"
"조심스럽게 말씀드리는 것입니다만," 소영이 잠시 주위를 둘러보며 말을 고른 후 입을 열었다. "전하께서 보이신 증상들이 단순한 과로나 병환과는 다르게 느껴집니다. 갑작스러운 어지럼증, 창백한 안색, 그리고..."
김문수는 소영의 말을 끊었다. "그런 말을 함부로 해서는 안 된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그래서 더 무서운 것 아닙니까?" 소영이 간절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만약 정말로 누군가가 전하를 해치려 한다면, 우리는 손 놓고 있을 수만은 없습니다."
김문수는 소영의 말에 충격을 받은 듯 잠시 말을 잃었다. 그의 머릿속에서는 여러 생각들이 빠르게 교차했다. 정조 주변의 정치적 긴장, 최근 들어 더욱 복잡해진 궁중의 분위기, 그리고 자신이 느끼고 있던 막연한 불안감들이 하나씩 떠올랐다.
"그대는 어떻게 그런 생각을..." 김문수가 천천히 물었다.
소영은 잠시 망설였다. 자신이 알고 있는 역사적 사실들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고민스러웠다.
"예전에 의서를 읽은 적이 있습니다. 그때 독에 중독되었을 때의 증상에 대해 알게 되었는데..." 소영이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 "갑작스러운 어지럼증과 함께 손떨림이 오고, 안색이 창백해지면서도 이상하게 윤기가 도는 경우가 있다고 했습니다."
김문수의 표정이 점점 굳어졌다. 소영이 묘사한 증상들이 방금 전 자신이 목격한 정조의 모습과 정확히 일치했기 때문이다.
"설마..." 김문수가 중얼거렸다.
"물론 제가 틀릴 수도 있습니다." 소영이 급히 덧붙였다. "하지만 만약을 위해서라도 더 주의 깊게 살펴봐야 하지 않을까요? 전하께서 드시는 음식이나 차, 그리고 주변 사람들의 움직임을..."
어전에서 또다시 급한 발소리가 들려왔다. 김문수는 그쪽을 바라보다가 다시 소영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대의 말이 사실이라면," 김문수의 목소리에 긴장감이 서렸다. "우리는 매우 위험한 상황에 처해 있는 것이다."
"그래서 더욱 조심해야 합니다." 소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혼자서는 할 수 없는 일입니다. 검서관님의 도움이 필요해요."
김문수는 소영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에는 진실된 걱정과 결연한 의지가 동시에 담겨 있었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범상치 않다고 생각했던 이 궁녀가, 이제는 자신보다도 예리한 통찰력을 보이고 있었다.
"좋다." 김문수가 결심한 듯 말했다. "일단 전하의 상태부터 다시 확인해보자. 그리고 그대가 말한 대로 주변을 더 세심히 관찰해보겠다."
소영의 얼굴에 안도의 표정이 스쳤다. "고맙습니다."
"하지만," 김문수가 엄중한 표정으로 덧붙였다. "이 일은 절대 다른 누구에게도 말해서는 안 된다. 자칫 잘못하면 우리 모두 위험에 처할 수 있다."
"물론입니다." 소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은 서로를 바라보며 묵묵한 동의를 나누었다. 복도를 스치는 차가운 바람이 그들의 옷자락을 흩날렸고, 멀리서 들려오는 궁녀들의 속삭임이 더욱 의미심장하게 느껴졌다.
김문수는 다시 어전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고, 소영은 그의 뒤를 따랐다. 두 사람의 마음속에는 이제 같은 목표가 자리 잡고 있었다. 정조를 지켜야 한다는 절박한 사명감이었다.
김문수가 걸음을 멈추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복도 양쪽으로 궁녀들이 오가고 있었고, 멀리서 내관들의 목소리도 들려왔다.
"여기서는 곤란하겠다." 그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규장각 서고로 가자. 거기서라면 조용히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소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은 발걸음을 돌려 규장각 쪽으로 향했다. 오후의 따뜻한 햇살이 처마 끝에서 부서져 내리고, 멀리서 새들의 지저귐이 들려왔다. 평온해 보이는 궁궐의 풍경과는 달리, 두 사람의 마음은 무거운 의혹으로 가득했다.
서고에 들어서자 오래된 책들의 묵직한 냄새가 코끝을 스쳤다. 높다랗게 쌓인 서책들 사이로 가느다란 햇빛이 스며들어 먼지 입자들을 황금빛으로 물들이고 있었다. 김문수가 문을 조심스럽게 닫고 주위를 살폈다.
"이제 말해보자." 그가 서가 사이의 작은 탁자 앞에 앉으며 말했다. "그대가 알고 있는 것들을."
소영은 잠시 망설였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막막했다. 그녀는 천천히 김문수 맞은편에 자리를 잡았다.
"검서관님께서는 전하 주변의 의관들을 얼마나 잘 아십니까?"
"의관들?" 김문수가 눈썹을 치켜올렸다. "대부분 잘 안다. 내의원 제조 강명길, 의관 이성원과 박세당... 모두 오랫동안 전하를 모셔온 사람들이다."
소영이 고개를 끄덕이며 손가락으로 탁자 위를 가볍게 두드렸다. "그분들 말고, 최근에 새로 들어온 사람은 없습니까?"
김문수의 표정이 굳어졌다. "새로 들어온 사람이라..." 그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아, 한 달 전쯤 의관 한 명이 새로 배치되었다. 이름은... 정약현이었나."
"정약현." 소영이 그 이름을 되뇌었다. 역사서에서 본 기억은 없었지만, 뭔가 석연치 않은 느낌이 들었다. "그 사람에 대해 더 자세히 알 수 있을까요?"
김문수가 서가로 다가가 몇 권의 문서를 꺼내왔다. 붓으로 쓰인 글자들이 빼곡히 적힌 종이의 거친 질감이 손끝에 느껴졌다.
"여기 있다." 그가 한 장의 문서를 소영 앞에 놓았다. "정약현, 나이 서른다섯. 지방에서 의술을 익혔다고 되어 있고... 추천인이 홍국영이다."
소영이 문서를 더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홍국영. 정조의 총애를 받으면서도 결국 권력욕에 눈이 멀어 몰락의 길을 걸었던 인물. 그리고 역사서에서 암시하던 정조 독살설과 연관된 의혹스러운 인물이기도 했다.
"홍국영의 추천이라..." 소영이 신중하게 말했다. "그 의관이 전하를 직접 진료한 적이 있습니까?"
"있다. 지난주에 전하께서 두통을 호소하셨을 때 강명길과 함께 입시했다." 김문수의 목소리에 점점 긴장감이 배어들기 시작했다. "그런데 왜 그런 것을 묻는가?"
소영은 다른 문서들을 뒤적이며 신중하게 답했다. "만약... 만약 정말로 누군가 전하를 해치려 한다면, 가장 가능성이 높은 방법이 무엇일까요?"
"독." 김문수가 즉답했다. 그리고는 자신의 말에 놀란 듯 눈을 크게 떴다. "설마..."
"조선왕조실록을 보면 여러 임금들이 의문사했다는 기록들이 있습니다." 소영이 조심스럽게 말을 이어갔다. "대부분 갑작스러운 병으로 기록되어 있지만, 그 증상들을 자세히 보면..."
그녀는 잠시 말을 멈추고 김문수의 반응을 살폈다. 그의 얼굴이 점점 창백해지고 있었다.
"계속해보라." 김문수가 목소리를 가다듬으며 말했다.
"어지럼증, 구토, 손떨림... 이런 증상들이 점진적으로 나타나다가 갑작스럽게 악화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리고 그때마다 새로운 의관이 치료에 참여했다는 기록도 있고요."
김문수가 문서를 다시 펼쳐보며 무언가를 확인했다. "정약현이 처방한 약재 목록이 여기 있다. 인삼, 백출, 감초..." 그가 목록을 읽어 내려가다가 갑자기 멈췄다. "이상하다."
"무엇이 이상합니까?"
"여기 적힌 약재 중에 웅황이 있다. 웅황은 보통 이런 증상에는 쓰지 않는데..." 김문수의 목소리가 떨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분량도 너무 많다."
소영이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웅황이 독이 될 수 있습니까?"
"과다 복용하면 그렇다. 특히 지속적으로 섭취하면..." 김문수가 문서를 내려놓으며 깊은 한숨을 쉬었다. "이런 식으로 생각해본 적이 없었는데."
창문으로 들어오는 오후 햇살이 두 사람의 얼굴을 따뜻하게 비췄지만, 서고 안의 분위기는 점점 무거워졌다. 소영은 김문수의 표정 변화를 주의 깊게 관찰했다. 처음에는 의심스러워했던 그가 이제는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렇다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소영이 말을 시작했다.
"정약현을 감시하는 것이다." 김문수가 단호하게 말했다. "그리고 전하께서 드시는 모든 약재를 확인해야 한다."
소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궁녀로서 접근할 수 있는 부분이 있고, 검서관님께서는 공식적인 경로로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이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 김문수가 일어나며 문서들을 정리했다. "내일부터 각자의 역할을 나누어 조사해보자. 하지만 절대 혼자 행동해서는 안 된다. 위험할 수 있다."
소영이 작은 미소를 지었다. 처음에는 자신을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던 김문수가 이제는 진심으로 걱정해주고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가 자신의 말을 믿어주고 있다는 것이 고마웠다.
"고맙습니다." 소영이 진심을 담아 말했다. "혼자라면 아무것도 할 수 없었을 텐데."
김문수가 잠시 그녀를 바라보았다. 오후 햇살이 만들어낸 황금빛 먼지 속에서 소영의 모습이 어딘지 모르게 신비로워 보였다. 그녀의 눈에는 자신보다 훨씬 깊은 무언가가 담겨 있었고, 그것이 그를 더욱 신뢰하게 만들었다.
"우리가 함께라면 분명 진실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그가 조용히 말했다.
두 사람은 서로를 바라보며 조용한 다짐을 나누었다. 서고 밖으로 궁궐의 일상적인 소음들이 들려왔지만, 이 순간 그들에게는 오직 정조를 지켜야 한다는 사명감만이 존재했다.
해가 서산으로 기울어가자 두 사람은 서고를 나와 후원으로 향했다. 하루 종일 문서와 씨름한 탓에 머리가 무거웠고, 차가운 저녁 공기가 필요했다.
후원의 연못가에 앉은 소영은 물 위에 떠오른 달빛을 바라보았다. 잔잔한 물결이 달빛을 부서뜨렸다가 다시 모으기를 반복했다. 21세기에서 보던 달과 똑같은 달이었지만, 이곳에서는 왠지 더 가깝게 느껴졌다.
"소영 궁녀." 김문수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오늘 하루 당신을 지켜보니 궁금한 것이 있소."
소영의 손끝이 차갑게 식었다. 혹시 자신의 정체를 눈치챈 것일까.
"당신은... 어떻게 그렇게 많은 것을 알고 있소? 궁중의 일반적인 궁녀라면 알기 어려운 것들을 너무 자세히 알고 있는 것 같은데."
소영은 한동안 말없이 연못을 바라보았다. 언젠가는 해야 할 이야기였다. 물론 전부를 말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김문수가 자신을 더 신뢰할 수 있도록 해야 했다.
"저는..." 소영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남들과는 조금 다른 곳에서 자랐습니다."
"다른 곳이라면?"
"아주 먼 곳이요. 거기서는... 많은 책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역사에 관한 책들, 의학에 관한 책들, 그리고..." 소영이 잠시 멈췄다. "미래에 일어날 일들에 대한 기록들도요."
김문수의 눈이 커졌다. "미래에 일어날 일들이라고?"
"믿기 어려우시겠지만, 저는 앞으로 일어날 일들을 어느 정도 알고 있습니다. 전하께서 위험에 처하실 것도, 궁중에 큰 변화가 올 것도." 소영이 잠시 말을 멈추고 숨을 고른 후 다시 입을 열었다. "그래서 이곳에 오게 되었습니다. 전하를 구하기 위해서요."
김문수는 한참 동안 말이 없었다. 상식적으로는 믿을 수 없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오늘 하루 소영을 지켜본 그에게는 이상하게도 그녀의 말이 완전히 거짓으로 들리지 않았다.
"그 먼 곳이라는 것이..." 김문수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혹시 우리가 아는 세상과는 다른 곳인가요?"
소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아주 다른 곳입니다. 거기서는 사람들이 하늘을 날 수 있고, 멀리 있는 사람과도 순식간에 이야기할 수 있어요. 병도 지금보다 훨씬 잘 고칠 수 있고요."
"그런 곳이 정말 있다는 말입니까?"
"검서관님도 책에서 읽어보셨을 것입니다. 옛날 선인들이 신선이 사는 곳에 대해 기록한 것들을요. 저는... 그런 곳에서 왔다고 생각해주시면 됩니다."
김문수가 한참 동안 연못을 바라보았다. 논리적으로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이야기였지만, 소영의 진지한 표정과 오늘 하루 보여준 그녀의 놀라운 통찰력을 생각하면 완전히 무시할 수도 없었다.
"그렇다면..." 그가 신중하게 말을 이어갔다. "당신이 말한 전하의 위험도 정말로..."
"네. 곧 일어날 일입니다." 소영의 목소리가 단호해졌다. "그래서 저희가 반드시 막아야 해요. 오늘 전하께서 보이신 증상은 시작에 불과합니다."
달빛이 소영의 얼굴을 비추었다. 그녀의 눈에는 미래를 아는 자만이 가질 수 있는 깊은 슬픔과 절박함이 담겨 있었다. 김문수는 그 눈빛에서 거짓을 찾을 수 없었다.
"저를 믿어주실 수 있나요?" 소영이 간절하게 물었다.
김문수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지만... 당신을 믿겠소. 오늘 하루만 봐도 당신이 평범한 궁녀가 아니라는 것은 분명하니까요."
소영이 깊게 숨을 내쉬었다. "고맙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는 약속해주시오." 김문수가 진지하게 말했다.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해 더 자세히 알고 있다면, 저에게 미리 알려주시오. 우리가 함께 대비할 수 있도록요."
"물론입니다. 다만..." 소영이 잠시 망설였다. "모든 것을 바꾸려 하면 오히려 더 큰 재앙을 불러올 수도 있어요. 신중하게 행동해야 합니다."
두 사람은 조용히 연못을 바라보았다. 밤공기가 차가워지고 있었지만, 그들의 마음은 따뜻한 신뢰로 가득했다. 서로 다른 세상에서 온 두 사람이지만, 이제는 같은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동반자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