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2
위기의 순간
약 25분 · 9,604자
칼날이 달빛을 받아 번뜩였다. 소영의 심장이 목구멍까지 뛰어올랐다.
"이쪽으로!"
김문수가 그녀의 손목을 잡아끌며 좁은 골목 사이로 몸을 던졌다. 뒤에서 무사들의 발소리가 쫓아왔다. 거친 숨소리와 갑옷 부딪치는 소리가 점점 가까워졌다.
"막다른 길이다!"
앞서 달리던 무사 하나가 외쳤다. 소영이 뒤돌아보니 세 명이 골목 입구를 막고 서 있었다. 등 뒤로는 높은 담장이 가로막고 있었다.
"항복하면 목숨만은 살려주겠다."
무사들이 천천히 다가왔다. 칼끝이 그들을 향해 겨눠져 있었다.
김문수가 소영 앞으로 나섰다. "소영, 내 뒤에 있어."
"안 돼. 혼자서는..."
"괜찮다." 그의 목소리가 떨렸지만 발걸음은 흔들리지 않았다. "내가 막고 있을 테니 담장을 넘어."
소영의 시선이 담장 위로 올라갔다. 너무 높았다. 그리고 설령 넘는다 해도 김문수를 두고 갈 수는 없었다.
"둘 다 가는 거야."
그녀가 주머니에서 부싯돌을 꺼냈다. 골목 한쪽에 쌓여 있던 짚단이 보였다. 아마 누군가 겨울 준비를 위해 모아둔 것 같았다.
"뭘 하려고?"
"불을 낼 거야."
소영이 부싯돌을 짚에 대고 재빨리 비볐다. 작은 불꽃이 튀었지만 꺼졌다. 다시 시도했다. 무사들이 한 걸음 더 다가왔다.
"서두르지 마라. 어차피 갈 곳은 없다."
세 번째 시도에서 짚이 타기 시작했다. 작은 불꽃이 마른 풀줄기를 타고 번져갔다. 소영이 타는 짚을 집어들어 더 큰 짚단에 던졌다.
"미친..."
무사 하나가 중얼거렸다. 불길이 순식간에 번졌다. 골목이 오렌지빛으로 물들었다.
"물을 가져와!"
누군가 외쳤지만 이미 늦었다. 바람이 불어와 불길을 더 크게 키웠다. 연기가 피어올라 골목을 가득 채웠다.
소영이 김문수의 소매를 잡아끌었다. "지금이야!"
연기 속에서 무사들이 기침을 해댔다. 그 틈을 타서 두 사람이 담장 쪽으로 달렸다. 김문수가 먼저 담장에 올라가 소영에게 손을 내밀었다.
"빨리!"
불길이 더 커졌다. 인근 가옥에서 사람들이 뛰어나왔다. "불이야! 불이야!" 외치는 소리가 사방에서 들렸다.
소영이 김문수의 손을 잡고 담장을 기어올랐다. 무릎이 돌에 긁혔지만 아픔을 느낄 겨를이 없었다.
"저기다!"
연기 속에서 무사 하나가 그들을 발견하고 소리쳤다. 화살이 날아와 소영의 치마 자락을 스쳤다.
두 사람이 담장 너머로 뛰어내렸다. 딱딱한 땅이 발바닥을 때렸다. 소영이 비틀거렸지만 김문수가 재빨리 부축했다.
"다쳤어?"
"괜찮아. 가자."
뒤에서 여전히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불을 끄려는 사람들과 그들을 쫓는 무사들이 뒤섞여 혼란스러웠다.
김문수가 소영의 손을 잡고 어둠 속으로 뛰어갔다. 그들의 발소리가 자갈길에 울렸다. 숨이 가빠서 가슴이 터질 것 같았지만 멈출 수 없었다.
"문서는?"
소영이 헐떡이며 물었다. 김문수가 품에서 두루마리를 꺼내 보였다. 하지만 가장자리가 그을렸고 일부가 찢어져 있었다.
"일부를 잃었어. 공모자 명단 부분이..."
소영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그 명단이 있어야 홍국영의 음모를 완전히 폭로할 수 있었는데.
"그래도 독 제조 방법과 계획서는 살았어." 김문수가 위로하듯 말했다. "이것만으로도 충분할 거야."
뒤에서 추격하는 소리가 점점 멀어졌다. 그들이 골목을 몇 개 더 지나자 마침내 조용해졌다.
"일단 안전한 곳으로 가야 해." 소영이 말했다. "그리고 서둘러 궁으로 돌아가야 해. 전하께서..."
말을 마치지 못했다. 정조의 얼굴이 떠올랐다. 창백하고 차가운 그 얼굴이.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해독제를 만들어야 했고, 홍국영의 음모를 막아야 했다. 그런데 가장 중요한 증거 일부를 잃어버렸다.
김문수가 그녀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괜찮을 거야. 우리가 해낼 거야."
소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포기할 수는 없었다. 아직 끝나지 않았다.
두 사람이 새벽 어둠 속으로 사라져갔다. 뒤편에서는 여전히 불을 끄려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창덕궁의 후문이 보이자 소영의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밤새 도망치며 품고 있던 한 가지 희망—정조가 무사하기를, 아직 시간이 남아있기를 바라는 발걸음이 저절로 빨라졌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빨리." 그녀가 김문수의 팔을 잡아끌었다.
궁궐 안은 새벽의 고요함에 잠겨 있었다. 평소보다 경비가 삼엄해 보였지만, 소영은 익숙한 길로 몸을 숨기며 정조의 침전으로 향했다. 김문수가 뒤따라왔다.
침전 앞에 도착했을 때, 소영의 심장이 멈춘 것 같았다. 너무 조용했다. 평소라면 들려야 할 작은 소음들—시녀들의 발소리, 속삭이는 대화소리, 생활의 기척—이 전혀 없었다.
"이상해." 김문수가 낮게 중얼거렸다.
소영이 조심스럽게 문을 열었다. 침전 안은 촛불 몇 개만이 희미하게 타고 있어 어둠 속에 잠겨 있었다. 공기가 무겁고 침침했다. 뭔가 달콤하면서도 썩은 냄새가 희미하게 풍겼다.
침상 위에 누워 있는 정조의 모습이 보였다.
소영의 발이 저절로 멈췄다. 어젯밤 떠날 때와는 완전히 달랐다. 정조의 얼굴은 밀랍처럼 창백했고, 입술은 거의 파랗게 변해 있었다. 가슴이 거의 움직이지 않는 것 같았다.
"전하..." 소영이 헐떡이며 침상으로 달려갔다.
정조의 손목을 잡았다. 차갑다. 너무 차가웠다. 맥박은 실처럼 가늘고 불규칙했다. 한 번, 두 번... 그리고 긴 공백. 다시 약하게 한 번.
"안 돼." 소영의 목소리가 떨렸다. "안 돼, 안 돼..."
김문수가 다가와서 정조의 상태를 살펴봤다. 그의 얼굴도 창백해졌다.
"독이... 독이 더 퍼진 것 같아." 소영이 정조의 목 부분을 만져봤다. 림프절이 부어 있었다. "체온이 너무 낮아. 호흡도 거의..."
그녀가 정조의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동공이 확장되어 있었다. 빛에 반응하지 않았다.
"늦었나?" 김문수가 목소리가 떨리며 물었다.
소영이 고개를 저었다. 포기할 수 없었다. 아직 맥박이 있다. 아직 숨을 쉬고 있다. 미약하지만 살아 있다.
"아니야. 아직 늦지 않았어." 그녀가 정조의 가슴에 귀를 대고 심장소리를 들었다. 불규칙하고 약했지만 뛰고 있었다. "심장이 아직 뛰고 있어. 우리가 시간 안에 돌아온 거야."
하지만 상황은 어젯밤보다 훨씬 심각했다. 독이 신경계 전체로 퍼진 것 같았다. 호흡 중추까지 영향을 받기 시작했다.
"해독제를 만들어야 해. 지금 당장." 소영이 일어서며 말했다. "그런데..."
그녀가 멈칫했다. 해독제를 만들 수는 있었지만, 정조의 상태가 이 정도라면 단순히 독을 중화시키는 것만으로는 부족했다. 심장과 호흡을 안정시켜야 했다. 현대 의학이라면 인공호흡기와 강심제를 써야 할 상황이었다.
"뭘 망설이고 있어?" 김문수가 다급하게 물었다.
소영이 정조의 손목을 다시 잡았다. 맥박이 더 약해진 것 같았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일단 해독제부터 만들어야 해." 그녀가 결정했다. "그리고 다른 방법도 생각해봐야 해."
김문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도울 게 있으면 말해."
소영이 정조의 얼굴을 다시 살펴봤다. 생기 없는 창백한 얼굴, 파란 입술, 차가운 피부. 모든 것이 죽음에 가까워지고 있음을 말해주고 있었다.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해야 해.' 그녀가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21세기의 의학 지식을 모두 동원해서라도.'
그때 정조의 입술이 미세하게 움직이는 것 같았다. 소영이 귀를 가까이 댔다.
"소영아..." 정조의 목소리가 실바람처럼 희미했다. "늦었... 구나..."
"아니에요, 전하." 소영이 정조의 손을 꽉 잡았다. "아직 늦지 않았어요. 제가 전하를 구할 거예요. 반드시."
정조의 눈꺼풀이 희미하게 떨렸지만 뜨지는 않았다.
김문수가 소영의 어깨를 붙잡았다. "소영아, 정말 방법이 있는 거야?"
소영이 김문수를 올려다봤다. 그의 눈에서 그의 눈이 떨리고 있었다. 주먹을 꽉 쥔 채로.
"있어." 그녀가 단호하게 말했다. "하지만 위험해. 아주 위험한 방법이야."
그녀의 머릿속에 한 가지 계획이 떠오르고 있었다. 현대 의학의 응급처치 방법들을. 하지만 그것을 쓰려면 자신이 누구인지, 어떻게 그런 지식을 알고 있는지 설명해야 할 수도 있었다.
정조의 호흡이 더욱 약해졌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소영이 정조의 맥박을 다시 확인했다. 너무 약했다. 이대로 가면 몇 시간 못 가서 심장이 멈출 것이다.
'활성탄이 있으면 좋겠지만...' 그녀가 머릿속으로 독성학 교과서를 뒤졌다. '위 세척도 이미 늦었고... 그렇다면 수액 공급과 해독 촉진이 최선이야.'
"문수야." 그녀가 일어났다. "물을 끓여. 아주 깨끗한 물로. 그리고 꿀이 있으면 가져와."
"꿀?"
"설탕 대신이야. 포도당 공급이 필요해." 소영이 정조의 옷깃을 풀면서 말했다. "그리고 소금도 조금. 아주 조금만."
김문수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지만 묻지 않고 달려나갔다.
소영이 정조의 목을 만져봤다. 경정맥이 함몰되어 있었다. 탈수 증상이 심각했다. 그녀가 정조의 입술을 살짝 벌려 혀를 확인했다. 건조하고 창백했다.
'수분 공급이 급선무야. 하지만 의식이 없는 상태에서 무리하게 먹이면 질식할 수 있어.'
그녀가 정조의 상체를 조심스럽게 일으켜 세웠다. 등 뒤에 베개를 받치고 머리를 약간 앞으로 기울게 했다. 기도 확보가 중요했다.
김문수가 뜨거운 물과 꿀단지를 들고 돌아왔다.
"이렇게 하는 거야." 소영이 꿀을 물에 타면서 설명했다. "조금씩, 아주 조금씩 먹여야 해. 목으로 넘어가는지 확인하면서."
그녀가 숟가락에 꿀물을 떠서 정조의 입술에 댔다. 액체가 입 안으로 스며들었지만 삼키는 반사는 없었다.
"전하." 소영이 정조의 뺨을 가볍게 두드렸다. "삼키세요. 삼켜야 해요."
몇 번의 시도 끝에 정조의 목구멍이 미세하게 움직였다. 삼켰다.
"됐어!" 소영이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조금씩 계속 줘야 해."
김문수가 소영의 손길을 지켜봤다. 마치 의원이 환자를 돌보는 것 같았다. 아니, 의원보다도 더 정확하고 체계적이었다.
"소영아, 너 정말..." 김문수가 말을 멈췄다.
"뭐?"
"아니야. 계속해."
소영이 한 숟가락씩 꿀물을 먹이면서 정조의 상태를 관찰했다. 맥박이 조금 안정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아직 턱없이 부족했다.
"문수야, 혹시 감초는 있을까? 아니면 인삼?"
"감초는 있을 거야. 어디에 쓰려고?"
"간 해독을 도와야 해. 독성 물질을 빨리 분해해서 배출시켜야 하거든."
김문수가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나갔다. 소영이 혼자 남아 정조의 손을 잡았다. 차갑고 축축했다.
'쇼크 증상이야. 혈압이 떨어지고 있어.'
그녀가 정조의 다리를 심장보다 높게 올렸다. 혈액 순환을 돕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담요를 더 덮어 체온을 유지시켰다.
김문수가 감초를 들고 돌아왔을 때, 소영은 정조의 손목을 마사지하고 있었다.
"혈액 순환을 도우는 거야." 그녀가 설명했다. "감초 우린 물도 조금씩 먹여야 해."
"소영아." 김문수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이 몸이 홍국영을 고발하러 가야 할 것 같은데..."
소영이 고개를 들었다. "무슨 소리야?"
"증거가 있잖아. 비록 일부를 잃었지만, 남은 것만으로도..."
"안 돼." 소영이 단호하게 말했다. "지금은 너무 위험해. 홍국영이 우리를 쫓고 있는 상황에서 나서봤자 오히려 역적으로 몰릴 수 있어."
"그럼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는가?"
소영이 정조를 내려다봤다. 숨소리가 조금 더 안정되었지만 아직도 위험했다.
"전하가 깨어나실 때까지." 그녀가 말했다. "전하가 직접 증언하셔야 해. 그래야만 홍국영을 확실히 제거할 수 있어."
김문수가 주먹을 꽉 쥐었다. "하지만 그때까지 전하가 버티실 수 있을까?"
"버티게 해야지." 소영이 다시 꿀물을 떠서 정조의 입에 댔다. "내가 반드시 살려낼 거야."
그때 정조의 눈꺼풀이 살짝 떨렸다. 소영이 얼른 몸을 숙였다.
"전하? 전하, 들리세요?"
정조의 입술이 미세하게 움직였다. 무언가 말하려는 것 같았다.
"천천히 하세요. 급하지 마시고."
"물..." 정조의 목소리가 바람처럼 희미했다.
소영이 얼른 꿀물을 한 숟가락 떠서 정조의 입에 댔다. 이번에는 정조가 스스로 삼켰다.
"더 드릴까요?"
정조가 희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김문수가 조심스럽게 바라봤다. "깨어나시는 건가?"
소영이 조심스럽게 관찰했다. 의식이 돌아오는 것은 좋은 신호였다. 하지만 아직 안심하기는 이르다.
"전하, 어디가 아프신지 말씀해 주세요."
정조가 간신히 눈을 떴다. 초점이 흐릿했지만 소영을 보고 있었다.
"속이... 타는 것 같고..." 정조가 힘겹게 말했다. "어지럽다..."
전형적인 독성 증상이었다. 소영이 안도했다. 적어도 뇌사 상태는 아니었다.
"괜찮아지실 거예요." 그녀가 정조의 손을 꽉 잡았다. "제가 전하를 구할 거예요. 꼭."
정조가 소영을 바라봤다. 그의 눈에서 무언가 묻는 듯한 표정을 읽을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질문할 때가 아니었다. 생명을 구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홍국영의 사저는 적막에 잠겨 있었다. 서재의 촛불 하나만이 어둠을 가르며 흔들리고 있었다. 그는 책상 앞에 앉아 작은 유리병을 손에 들고 있었다. 병 안의 액체는 무색투명했지만, 촛불에 비춰지자 기묘하게 푸른빛을 띠었다.
"이번에는 실패할 수 없다."
홍국영이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병을 빛에 비춰 들여다보며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 이것은 그가 준비한 마지막 카드였다. 조선에서 구할 수 있는 가장 치명적인 독이었다.
그는 책상 서랍에서 또 다른 작은 병을 꺼냈다. 이번 것은 연한 황색을 띠었다.
"하나는 즉사용, 하나는 지연용."
홍국영이 두 병을 나란히 놓고 바라봤다. 즉사용은 마시는 즉시 심장을 멈추게 했다. 지연용은 천천히 내장을 썩게 만들어 며칠에 걸쳐 고통스럽게 죽음에 이르게 했다.
"전하께서는... 어느 쪽을 원하실까."
그의 목소리에는 조롱이 섞여 있었다. 정조가 의식을 되찾고 있다는 소식을 이미 들었다. 하지만 그것은 오히려 좋은 일이었다. 계획을 완성하기에 더 적절한 타이밍이었다.
문 밖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홍국영이 두 병을 재빨리 품 안에 감췄다.
"들어오라."
문이 열리며 검은 옷을 입은 사내가 들어왔다. 그의 얼굴은 그림자에 가려져 있었지만, 걸음걸이에서 살기가 느껴졌다.
"준비됐나?"
"예, 대감."
"한소영과 김문수는?"
"궁 안에서 전하를 돌보고 있다고 합니다."
홍국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다. 그럼 한 번에 정리하자."
그는 품에서 즉사용 독을 꺼냈다.
"이것을 정조의 약에 섞어라. 한 방울이면 충분하다."
사내가 조심스럽게 병을 받아들었다.
"그리고 한소영과 김문수는?"
"그들은..." 홍국영이 잠시 생각했다. "그들은... 적절한 시점에 처리하자. 반역자로 몰아서 말이다."
홍국영이 일어나 창문으로 걸어갔다. 동쪽 하늘이 희미하게 밝아오고 있었다. 새벽이 다가오고 있었다.
"오늘 해가 뜨기 전에 모든 것이 끝날 것이다."
그가 뒤돌아 사내를 바라봤다.
"실수는 용납하지 않는다. 이해했나?"
"예, 대감."
사내가 고개를 숙이며 물러났다.
홍국영이 혼자 남자 다시 창가로 갔다. 궁궐의 지붕들이 어둠 속에서 희미하게 윤곽을 드러내고 있었다. 저 어딘가에서 정조가 마지막 숨을 헐떡이고 있을 것이다.
"스무 년을 기다렸다."
그의 목소리가 어둠 속에서 울렸다.
"스무 년 동안 그 자리를 바라보며 참고 또 참았다. 이제 끝이다."
홍국영이 품에서 지연용 독을 꺼내 빛에 비춰 들여다봤다. 이것은 만약을 위한 보험이었다. 첫 번째 계획이 실패할 경우를 대비한 것이다.
"한소영..." 그가 그녀의 이름을 입에 올렸다. "네가 누구든 상관없다. 오늘 밤이 네 마지막 밤이 될 것이다."
그는 다시 책상으로 돌아가 붓을 들었다. 마지막 계획을 정리해야 했다. 정조가 죽은 후의 시나리오를 완벽하게 준비해야 했다.
붓끝에서 먹이 떨어져 종이 위에 검은 점을 만들었다. 홍국영이 그 점을 바라보며 미소지었다.
"피보다 진한 먹물이로구나."
그가 붓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한 획 한 획이 정조의 죽음을 앞당기고 있었다.
소영의 손이 정조의 맥박을 확인하던 순간, 침전 밖에서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규칙적이고 무겁고, 너무나 익숙한 그 소리에 소영의 등골이 서늘해졌다.
"홍국영이다."
김문수가 낮게 속삭였다. 그의 손이 칼자루로 향했지만, 소영이 그를 제지했다.
"아니다. 여기서 싸우면 전하가 위험해진다."
문이 열리는 소리. 홍국영의 실루엣이 촛불에 비쳐 길게 늘어졌다. 그의 손에는 작은 약병이 들려 있었다.
"한소영." 홍국영의 목소리가 침전을 가득 채웠다. "아직도 헛된 희망을 품고 있느냐."
소영이 천천히 일어섰다. 정조와 홍국영 사이에 자신의 몸을 세웠다.
"물러서시오. 전하께서 깨어나고 계십니다."
"깨어난다고?" 홍국영이 비웃었다. "그럴 리 없다. 내가 준 독은 완벽했으니까."
그 순간 정조의 손가락이 미세하게 떨렸다. 호흡이 조금 더 깊어졌다. 소영의 응급처치가 효과를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홍국영의 눈이 날카로워졌다. "설마..."
"전하!" 소영이 정조의 어깨를 가볍게 흔들었다. "전하, 들리십니까?"
정조의 눈꺼풀이 천천히 열렸다. 흐릿하지만 분명히 의식이 돌아오고 있었다.
"누구... 냐..."
"전하!" 김문수가 앞으로 나섰다. "홍국영이 전하를 독살하려 했습니다!"
홍국영이 약병 마개를 열었다. 투명한 액체가 촛불에 반짝였다.
"늦었다. 이번에는 확실히 끝내겠다."
그가 정조를 향해 한 걸음 다가섰다. 소영이 그의 앞을 막아섰다.
"비켜라, 한소영. 네 정체가 무엇이든 더 이상 방해할 수는 없다."
"내 정체를 알고 싶으시다고요?" 소영의 목소리가 떨렸다. 하지만 그것은 두려움이 아니라 분노였다. "좋습니다. 말씀드리겠습니다."
김문수가 놀란 눈으로 그녀를 바라봤다. 소영이 깊이 숨을 들이쉬었다.
"나는 한소영이 아닙니다." 그녀의 목소리가 침전에 울렸다. "나는 미래에서 온 사람입니다. 정확히는 서기 2024년에서."
홍국영이 걸음을 멈췄다. "무슨 헛소리를..."
"헛소리가 아닙니다!" 소영이 외쳤다. "내가 어떻게 전하의 독을 알아낼 수 있었는지, 어떻게 해독제를 만들 수 있었는지 궁금하지 않으셨습니까?"
정조의 눈이 조금 더 또렷해졌다. 그가 소영을 바라보고 있었다.
"미래에서는..." 소영의 목소리가 간절해졌다. "전하를 정조대왕이라 부릅니다. 조선의 가장 위대한 왕 중 한 분으로 기억됩니다. 하지만 역사는 전하가 독살당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홍국영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말도 안 되는..."
"홍국영!" 소영이 그를 똑바로 바라봤다. "당신은 역사에 역적으로 기록됩니다. 왕을 독살한 간신으로!"
"거짓말이다!"
홍국영이 약병을 들고 돌진했다. 김문수가 칼을 뽑아 그를 막으려 했지만, 소영이 더 빨랐다.
"전하! 홍국영이 전하를 독살하려 합니다!"
소영이 홍국영의 팔을 붙잡았다. 약병이 바닥에 떨어져 산산이 부서졌다. 투명한 액체가 마루 위로 흘러내렸다.
정조가 침상에서 일어나려 애쓰고 있었다. 그의 눈이 소영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너는..." 정조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렸다. "정말로... 미래에서 온 것이냐?"
침전이 고요해졌다. 홍국영조차 숨을 죽이고 있었다. 소영이 무릎을 꿇었다.
"전하, 믿어주십시오. 제가 온 이유는 오직 하나입니다. 전하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서입니다."
정조가 그녀를 바라보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눈에서 무언가 달라진 것을 소영은 느낄 수 있었다.
"그렇다면..." 정조가 홍국영을 바라봤다. "네가 과연 무엇을 꾸몄는지 듣고 싶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