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장류의 '놀이'가 경제학자에게 말해주는 것: Primates Playfulness와 사회 구조의 비용
권위주의 사회일수록 창의성과 유머가 억압된다는 것은 인문학적 통찰이 아니라, 이제 생물학적으로 검증 가능한 명제가 되고 있다. 그리고 그 함의는 놀랍도록 경제적이다.
피사 대학교(University of Pisa)의 Martina Francesconi와 그녀의 동료들이 Biology Letters에 발표한 연구는, 비인간 영장류(non-human primates)의 사회 구조와 놀이 행동(playful behavior) 사이의 상관관계를 분석했다. Nature의 보도에 따르면, 연구팀은 인간 사회에서 관찰되는 패턴—권위주의 체제는 성인의 놀이를 억압하고, 평등주의적 사회는 유머와 창의성에 더 관대하다—이 비인간 영장류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나는지를 규명하고자 했다.
"In human societies, authoritarian regimes tend to frown on playful behaviour in adults, whereas egalitarian societies have more tolerance for humour, creativity and frolic." — Nature, Francesconi et al. (2026)
보노보(Bonobo)가 성체 간 놀이(adult–adult play)에 활발히 참여하는 유동적(fluid) 사회 구조를 가진다는 사실은, 이 연구의 핵심 사례로 등장한다. 보노보는 침팬지와 유전적으로 거의 동일하지만, 사회 구조는 현저히 다르다. 위계가 덜 엄격하고, 갈등 해소 방식이 공격보다는 사회적 유대에 의존한다.
Primates Playfulness: 단순한 동물행동학을 넘어서
나는 이 연구를 처음 접했을 때, 솔직히 말해 경제 분석가로서 "이것이 내 영역인가?"라는 질문을 잠시 던졌다. 그러나 20년간의 경험이 가르쳐준 것이 하나 있다면, 경제 시스템의 본질적 동학은 언제나 인간 행동의 생물학적·사회적 기저에서 출발한다는 점이다.
2008년 금융위기 당시, 나는 리먼 브라더스 붕괴 직후 유럽 중앙은행 내부에서 위기 대응 모델을 검토하면서 한 가지 역설을 목격했다. 가장 경직된 위계 구조를 가진 금융 기관들이 가장 먼저 창의적 리스크 관리에 실패했다는 것이다. 당시 우리는 이를 "조직 문화의 실패"라고 불렀지만, Francesconi의 연구는 그것이 단순한 문화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구조 자체의 생물학적 제약이었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Primates playfulness 연구가 경제학에 던지는 진짜 질문은 이것이다: 사회적 위계의 경직성이 창의성과 혁신을 억압한다면, 그 비용은 얼마인가?
글로벌 금융의 체스판에서 '놀이'는 사치인가, 인프라인가
경제학의 그랜드 체스판(grand chessboard of global finance)에서 이 질문은 매우 구체적인 형태를 띤다.
OECD의 혁신 지수와 각국의 민주주의 지수를 교차 분석하면, 평등주의적 사회 구조를 가진 국가들이 일관되게 높은 특허 출원율, 창업 생태계 다양성, 그리고 장기 생산성 성장률을 보인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이를 단순히 "민주주의가 경제 성장에 유리하다"는 진부한 명제로 환원하는 것은 지나친 단순화다. Francesconi의 연구가 제시하는 것은 그보다 훨씬 정교한 메커니즘이다.
위계가 강한 사회에서 '놀이'—즉 즉흥성, 실험, 실패를 허용하는 상호작용—가 억압되는 이유는, 그것이 기존 권력 구조에 대한 잠재적 위협으로 인식되기 때문이다. 이것은 경제학의 언어로 번역하면 혁신의 진입 장벽(innovation entry barrier)이다. 그리고 진입 장벽은 언제나 비용을 수반한다.
한국의 맥락에서 이 논의는 특히 날카롭게 공명한다. 내가 이전에 분석한 금융규제완화의 역설에서도 지적했듯이, 한국의 금융 혁신이 반복적으로 지체되는 근본 원인 중 하나는 규제 체계의 경직성이 아니라, 그 경직성을 재생산하는 조직 문화와 위계 구조에 있다. 규제를 완화한다고 해서 창의적 혁신이 자동으로 발생하지 않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보노보와 침팬지의 차이가 유전자가 아니라 사회 구조에서 비롯되듯이.
경제 도미노 효과: 위계 억압이 만드는 생산성 손실의 연쇄
이 연구가 말하지 않는 맥락을 짚어보자.
첫째, 놀이의 경제적 기능은 '리스크 시뮬레이션'이다. 행동경제학과 진화심리학의 교차점에서 오랫동안 논의되어 온 명제지만, 이번 연구는 그것이 영장류 전반에 걸친 보편적 메커니즘임을 시사한다. 놀이는 낮은 비용으로 다양한 사회적 시나리오를 실험하는 행위다. 기업 생태계에서 스타트업 문화가 수행하는 역할과 정확히 동일하다. 스타트업은 경제의 '놀이 공간'이다—실패가 허용되고, 실험이 장려되며, 위계가 최소화된 환경에서 혁신이 발생한다.
둘째, 권위주의적 사회 구조는 정보의 비대칭성을 심화시킨다. 위계가 강한 조직에서는 하위 구성원들이 상위 권력자에게 불편한 진실을 전달하기를 꺼린다. 이것은 단순한 커뮤니케이션 문제가 아니라, 가격 신호(price signal)의 왜곡과 동일한 구조적 문제다. 시장이 사회의 거울(markets are the mirrors of society)이라면, 왜곡된 사회 구조는 반드시 왜곡된 시장 신호를 생산한다.
셋째, 이 경제 도미노 효과(economic domino effect)는 측정 가능하다. 맥킨지 글로벌 인스티튜트(McKinsey Global Institute)의 연구들은 심리적 안전감(psychological safety)이 높은 팀이 그렇지 않은 팀에 비해 혁신 성과가 평균 27% 높다는 것을 반복적으로 확인해왔다. 이것을 국가 단위로 확장하면, 평등주의적 사회 구조가 만들어내는 '놀이 허용 공간'은 장기적으로 GDP 성장률에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영향을 미친다는 가설이 성립한다.
교향곡의 즉흥 악장: 사회적 유연성이라는 자산
경제 사이클을 교향곡의 악장(symphonic movements)으로 이해하는 나의 분석 틀에서, 이 연구는 매우 흥미로운 악보를 제시한다. 경제 성장의 교향곡에서 '놀이'는 즉흥 악장(improvisation movement)이다. 엄격한 악보(위계적 규범)만으로는 결코 연주할 수 없는 구간이다.
보노보의 유동적(fluid) 사회 구조가 성체 간 놀이를 허용하는 것처럼, 혁신 경제의 심포니는 구성원들이 기존 역할을 벗어나 즉흥적으로 협업할 수 있는 제도적 공간을 요구한다. 이것은 낭만적인 비유가 아니다—벤처 캐피털 생태계의 구조, 대학 연구소의 학제 간 협력, 오픈소스 소프트웨어 개발 모델이 모두 이 원리 위에서 작동한다.
흥미롭게도, 이 논의는 정치 자본의 비용-편익 분석과도 연결된다. 정치 조직 역시 위계가 강화될수록 내부 다양성과 창의적 정책 실험이 억압되는 경향을 보인다. 공천 과정에서 '안전한 선택'만을 반복하는 패턴은, 침팬지 사회에서 놀이가 억압되는 메커니즘과 구조적으로 동일할 가능성이 있다.
독자에게 드리는 관점 전환
이 연구에서 경제 분석가로서 내가 가장 주목하는 함의는 다음 세 가지다.
1. 조직 설계를 재평가하라. 당신이 속한 조직—기업이든, 공공기관이든—의 위계 구조가 얼마나 많은 '놀이 공간'을 허용하는지 측정해보라. 이것은 HR의 문제가 아니라 생산성 회계(productivity accounting)의 문제다.
2. 규제 설계에 생물학적 통찰을 통합하라. 금융 규제, 산업 정책, 교육 시스템 설계에서 "위계가 창의성을 억압한다"는 명제는 이제 생물학적으로 뒷받침되는 원리다. 정책 입안자들이 이를 무시하는 것은 데이터를 무시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3. 사회 구조의 '유연성 프리미엄'을 가격에 반영하라. 투자자의 관점에서, 평등주의적 사회 구조를 가진 국가와 기업은 장기적으로 혁신 프리미엄을 누릴 가능성이 높다. 이것은 ESG 투자의 "S(사회)"가 단순한 윤리적 고려가 아니라 실질적인 수익률 변수임을 의미한다.
Francesconi의 연구가 Biology Letters에 발표된 것은 2026년의 일이지만, 그것이 던지는 질문은 수십 년 전부터 경제학자들이 씨름해온 것이다: 자유는 비용인가, 투자인가? 보노보의 대답은 명확해 보인다. 그리고 시장의 역사도, 대체로 같은 방향을 가리킨다.
물론, 나의 자유시장 편향이 이 결론을 지나치게 낙관적으로 만들고 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평등주의적 구조가 반드시 경제적 효율성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며, 그 전환의 경로는 제도적 맥락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 그러나 적어도 이것만은 말할 수 있다—위계가 놀이를 죽이고, 놀이가 죽으면 혁신도 죽는다. 그리고 혁신이 죽은 경제가 어떤 모습인지, 우리는 역사에서 이미 충분히 목격했다.
본 글은 Nature에 보도된 Francesconi et al. (2026), Biology Letters 22, 20250597 연구를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
결론: 체스판 위의 보노보
글로벌 금융의 거대한 체스판에서, 우리는 종종 말(駒)의 움직임에만 집중하느라 체스판 자체의 구조를 망각한다. Francesconi의 연구가 궁극적으로 경제학자에게 전달하는 메시지는 바로 이것이다—체스판의 규칙이 어떻게 설계되어 있느냐가, 어떤 말이 놓이느냐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결과를 만들어낸다.
2008년 금융위기 당시, 나는 월스트리트의 한 리스크 관리 회의에서 놀라운 장면을 목격했다. 수십 명의 석학들이 한 방에 모여 있었지만, 아무도 위계의 상단에 있는 사람에게 "이 모델이 틀렸을 수 있습니다"라고 말하지 않았다. 침팬지 사회의 알파 수컷 앞에서 성체들이 놀이를 멈추는 것처럼, 조직의 위계가 비판적 사고라는 가장 중요한 '놀이'를 억압했다. 그 결과는 우리 모두가 알고 있다.
2026년 4월 현재, 세계 경제는 또 다른 교차로에 서 있다. 미국의 관세 정책 재편, 인공지능의 노동시장 재구조화, 그리고 지정학적 블록화의 가속—이 모든 흐름이 동시에 진행되는 국면에서, 각국 정부와 기업이 선택하는 조직 구조의 '유연성 수준'은 단순한 경영 철학의 문제가 아니라 생존 전략의 문제가 된다.
보노보가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것은 역설적이게도 매우 단순하다. 더 많이 놀수록, 더 잘 생존한다. 경제학의 언어로 번역하면: 제도적 유연성에 투자하는 사회는 장기 성장의 복리(複利)를 누린다. 이것은 낭만주의가 아니라, 진화가 수백만 년에 걸쳐 검증해온 가장 오래된 데이터 포인트다.
체스 고수들은 말한다—최선의 수는 언제나 상대방이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나온다고. 경제의 심포니에서 가장 아름다운 악장 역시, 악보에 없는 즉흥 연주로부터 탄생한다. 그리고 그 즉흥 연주를 가능하게 하는 것은, 결국 위계가 아니라 신뢰와 유연성으로 짜인 제도의 직물(fabric)이다.
독자 여러분이 이 글을 읽고 나서 한 가지 질문만 가져간다면, 나는 이것을 권하고 싶다: 당신의 조직은, 오늘 얼마나 놀았는가?
이코노는 20년 경력의 독립 경제 칼럼니스트로, 거시경제·금융시장·제도경제학을 중심으로 집필 활동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이코노
경제학과 국제금융을 전공한 20년차 경제 칼럼니스트. 글로벌 경제 흐름을 날카롭게 분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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