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경제학상 수상자가 청와대에 간 날: '창조적 파괴'는 한국 경제에 처방전이 될 수 있는가
이재명 대통령이 오는 15일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피터 하윗 교수를 청와대에서 면담한다는 소식은, 단순한 외교적 의례를 넘어 한국 성장 전략의 이론적 기반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를 가늠케 하는 신호탄이다. 글로벌 공급망 재편과 미·중 패권 경쟁이 격화되는 지금, 국가 성장 모델의 선택은 그 어느 때보다 절박한 과제가 되었다.
하윗 교수는 누구이며, 왜 지금인가
SBS 뉴스 원문 보도에 따르면, 피터 하윗 브라운대 명예교수는 프랑스 경제학자 필립 아기옹과 함께 '창조적 파괴를 통한 지속 가능한 성장 이론'으로 2025년 노벨경제학상을 공동 수상했다. 슘페터의 '창조적 파괴' 개념을 현대 성장 이론의 수학적 언어로 정교하게 재구성한 아기옹-하윗 모델은, 단순히 자본과 노동의 투입이 아니라 기술 혁신의 빈도와 질이 장기 성장의 핵심 동력임을 실증적으로 밝혀냈다.
흥미로운 것은 타이밍이다. 2026년 5월 13일 현재, 이재명 대통령은 같은 날 미국 재무장관 스콧 베센트와 중국 국무원 부총리 허리펑을 연이어 접견하고 있다. 미·중 사이에서 줄타기 외교를 펼치는 와중에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와의 면담을 일정에 넣었다는 것은, 이 정부가 경제 외교의 메시지를 단순한 투자 유치 이상으로 설계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이론적 권위를 빌려 정책 방향에 정당성을 부여하려는 시도로 읽힌다면 지나친 해석일까? 나는 그렇게 보지 않는다.
노벨경제학상 이론이 한국 경제에 던지는 진짜 질문
아기옹-하윗 성장 모델의 핵심 명제는 단순하면서도 불편하다. 선도 기업이 독점적 지위를 이용해 혁신을 억제하면, 경제 전체의 성장률이 하락한다. 경쟁이 혁신의 유인을 만들고, 혁신이 성장을 추동한다는 논리다. 하윗 교수 본인도 노벨경제학상 수상 발표 직후 온라인 기자회견에서 이를 명확히 짚었다.
"선도기업들이 혁신을 계속 유인할 수 있도록 독점을 규제하고 경쟁적 시장 환경을 갖추는 게 중요하다." — 피터 하윗, 2025년 노벨경제학상 수상 후 기자회견
이 발언을 한국 경제 구조에 대입해보면, 체스판의 말들이 갑자기 제자리를 바꾸는 것처럼 불편한 재배치가 일어난다. 한국은 GDP 대비 R&D 투자 비중이 세계 최고 수준(2024년 기준 약 4.9%)이지만, 그 혁신의 과실이 누구에게 귀속되는가라는 질문에는 여전히 명쾌한 답이 없다. 대기업 중심의 수직계열화 구조, 플랫폼 독점, 그리고 스타트업 생태계의 '대기업 인수 후 혁신 흡수' 패턴은 하윗 이론이 경고하는 혁신 억제 메커니즘과 정확히 맞닿아 있다.
'창조적 파괴'와 한국 경제의 구조적 딜레마
여기서 기사가 말하지 않는 맥락을 짚어야 한다.
아기옹-하윗 모델은 두 가지 시장 상태를 구분한다. '목 위에서 숨 쉬는 경쟁자(neck-and-neck competition)' 구도에서는 선도 기업도 혁신을 멈추지 않는다. 하지만 격차가 너무 벌어지면, 선도 기업은 혁신보다 기득권 방어에 자원을 투입하기 시작한다. 이 전환점을 넘어서면 경제 전체의 성장 모멘텀이 꺾인다.
한국의 현재 위치는 어디인가? 반도체·배터리·조선 등 전통 강세 산업에서는 여전히 세계적 경쟁력을 유지하고 있지만, AI·바이오·플랫폼 경제 등 차세대 성장 엔진에서는 대기업과 스타트업 간의 생태계 협력이 미흡하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특히 삼성 파업 사태에서 드러났듯이, 한국 대기업들은 내부적으로도 혁신 투자의 우선순위와 노동 보상 구조 사이에서 심각한 긴장을 겪고 있다. 이는 단순히 노사 문제가 아니라, 기업이 미래 혁신에 자원을 배분하는 방식 자체가 흔들리고 있다는 신호다.
하윗 교수가 KDI 컨퍼런스에서 하준경 청와대 경제성장수석과 논의할 '혁신 전략'이 이 구조적 딜레마를 정면으로 다룰 수 있을지, 나는 조심스럽게 기대와 회의를 동시에 품고 있다. 하 수석이 하윗 교수의 박사학위 제자라는 사실은 이론적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나, 이론과 정책 현실 사이의 간극은 언제나 예상보다 깊다.
정치적 노이즈 속에서 신호를 읽는 법
같은 날 국민의힘 송언석 원내대표는 청와대 김용범 정책실장의 '국민배당금제' 언급을 두고 "사회주의적 발상"이라며 경질을 요구했다. 이 정치적 소음은 흥미로운 대비를 만들어낸다.
한편에서는 노벨경제학상 수상자를 초청해 '혁신과 경쟁'을 논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국민배당금제라는 분배 중심의 정책 아이디어가 청와대 내부에서 흘러나오고 있다. 이 두 신호가 일관된 경제 철학으로 수렴하는지, 아니면 서로 다른 정치적 청중을 겨냥한 분리된 메시지인지는 아직 불분명하다. 시장은 이런 불일치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정책 일관성의 결여는 투자 불확실성으로 직결되기 때문이다.
아기옹-하윗 이론의 관점에서 보면, 분배와 혁신은 반드시 상충하지 않는다. 오히려 혁신의 과실이 특정 계층에만 귀속될 때 사회적 갈등이 증폭되고, 이것이 다시 혁신 생태계를 훼손하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는 실증 연구도 있다. 하버드 경제학 리뷰에서도 아기옹 교수가 혁신과 불평등의 상관관계를 지속적으로 연구해온 것은 이 맥락에서 의미심장하다.
글로벌 체스판에서 한국의 수
그랜드 파이낸스의 체스판 위에서, 이번 면담은 단순한 한 수가 아니다. 미·중 재무 수장들을 연이어 만나며 공급망 재편의 실리를 챙기는 동시에, 성장 이론의 권위자와 함께 '어떤 방식으로 성장할 것인가'라는 질적 질문을 던지는 구도는 나름의 전략적 정합성을 갖는다.
다만, 이 면담이 실질적인 정책 변화로 이어지려면 몇 가지 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고 본다.
첫째, 반독점 규제의 실효성 강화다. 하윗 교수가 강조한 '경쟁적 시장 환경'은 구호가 아니라 집행력의 문제다. 공정거래위원회의 독립성과 집행 역량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이론은 공허한 메아리에 그친다.
둘째, 혁신 생태계의 다층화다. 대기업 중심의 혁신 흡수 구조에서 벗어나, 중견·중소기업과 스타트업이 독립적으로 성장 사다리를 오를 수 있는 제도적 인프라가 필요하다. 이는 단순히 자금 지원의 문제가 아니라, AI 시대에 생각하는 손이 사라지지 않도록 인적 자본의 다양성을 보존하는 문제이기도 하다.
셋째, 정책 일관성의 확보다. 혁신 친화적 메시지와 분배 중심 정책 실험이 동시에 진행될 때, 시장은 어느 신호를 더 신뢰해야 할지 혼란스러워한다. 이 혼란이 장기화되면 투자 심리가 위축되고, 결국 혁신의 토양 자체가 메말라간다.
이론과 현실 사이, 그 간극을 메우는 것은
경제학의 역사를 돌아보면, 노벨경제학상 수상 이론이 실제 정책에 온전히 구현된 사례는 생각보다 드물다. 케인스의 이론이 뉴딜 정책에 영감을 주었지만, 케인스 본인이 설계한 방식과는 거리가 있었던 것처럼, 이론은 언제나 정치적 현실이라는 필터를 통과하며 굴절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면담이 의미 있는 이유는 하나다. 성장의 방향을 묻는 질문 자체를 공식 의제로 올렸다는 것. 숫자로 가득한 경제 정책 논의에서 '어떤 혁신을, 누구를 위해, 어떤 방식으로 추동할 것인가'라는 질적 질문이 청와대의 테이블 위에 놓였다는 사실은, 그 자체로 경제 정책의 교향곡에서 새로운 악장이 시작되는 신호일 수 있다.
물론, 그 악장이 아름다운 선율로 완성될지, 아니면 불협화음으로 끝날지는 — 언제나 그렇듯 — 집행의 영역에 달려 있다. 이론은 악보를 제공할 수 있지만, 연주는 결국 정책 입안자들의 몫이다. 그리고 청중은, 우리 모두다.
이코노
경제학과 국제금융을 전공한 20년차 경제 칼럼니스트. 글로벌 경제 흐름을 날카롭게 분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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