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리아엑심은행이 우즈베키스탄에 베팅하는 진짜 이유: MOU 뒤에 숨은 공급망 지정학
사마르칸트에서 서명된 MOU 한 장이 단순한 외교적 제스처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코리아엑심은행이 우즈베키스탄 투자부와 맺은 이번 협약은, 한국 정책금융이 중앙아시아를 어떻게 재편하려는지를 보여주는 전략적 신호다.
ADB 연차총회 사이드라인에서 무슨 일이 있었나
Korea Times 원문 보도에 따르면, 코리아엑심은행은 지난 5월 4일 사마르칸트에서 열린 아시아개발은행(ADB) 연차총회 사이드라인에서 우즈베키스탄 투자산업무역부와 MOU를 체결했다. 한국 측에서는 구윤철 기획재정부 장관과 황기연 코리아엑심은행 행장이 직접 참석했고, 우즈베크 측에서는 코드자예프 잠시드 부총리를 포함해 재무장관과 투자부 차관이 배석했다.
고위급 인사가 이렇게 대거 집결한 데는 이유가 있다. 이번 MOU는 지난해 12월 양국 경제부총리 간 합의를 후속 조치로 구체화한 것으로, 단순한 선언이 아니라 정책금융 도구를 양자협력 프로젝트에 직접 연결하는 실행 체계를 구축하려는 시도다.
"The MOU is a crucial step in advancing bilateral agreements into concrete actions. Eximbank will actively support Korean companies in making tangible progress in Uzbekistan's infrastructure, green energy and advanced technology sectors." — 황기연 코리아엑심은행 행장 (Korea Times)
기사가 말하지 않는 맥락: 왜 지금, 왜 우즈베키스탄인가
표면적으로 이번 협약의 키워드는 '에너지 전환', '그린 인프라', 'AI 기술'이다. 그러나 이 세 가지를 하나로 묶는 더 큰 맥락이 있다: 공급망 다변화와 희토류·핵심 광물 접근성이다.
우즈베키스탄은 우라늄 매장량 세계 12위권, 금·구리·텅스텐·몰리브덴 등 전략 광물의 주요 보유국이다. 중국의 희토류 수출 통제가 현실화되고 미국의 관세 전쟁이 글로벌 공급망을 재편하는 2026년 현재, 중앙아시아는 더 이상 '변방'이 아니다. 한국 입장에서는 반도체·배터리·방산 산업의 원자재 공급선을 다각화해야 하는 구조적 압박이 커지고 있다.
KOSPI가 5월 4일 하루에만 5.12% 급등해 사상 최고치인 6,936.99를 기록한 것도 이 맥락에서 읽힌다. 반도체 대형주 중심의 랠리는 한국 수출 기업들이 공급망 안정화에 얼마나 민감하게 반응하는지를 보여준다. 코리아엑심은행의 우즈베키스탄 행보는 이런 시장 심리를 정책금융 차원에서 뒷받침하는 움직임이라고 볼 수 있다.
'K-마루'가 의미하는 것: 정책금융의 플랫폼화
이번 협약과 함께 주목할 대목은 타슈켄트 사무소 이전이다. 2007년 설립된 코리아엑심은행 타슈켄트 사무소는 최근 KOTRA(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 사무소와 같은 건물로 이전했다. 이는 'K-마루'라는 정부 이니셔티브의 일환으로, 해외 공공기관 사무소를 통합해 금융·마케팅·정보공유를 원스톱으로 제공하는 체계다.
이 구조는 단순한 행정 효율화가 아니다. 정책금융(Eximbank)과 무역투자 지원(KOTRA)을 물리적으로 통합함으로써, 한국 기업이 현지에서 프로젝트 발굴부터 금융 조달까지 한 지붕 아래서 해결할 수 있는 생태계를 만드는 것이다. 일본의 JBIC-JETRO 협력 모델이나 중국의 국가개발은행-상무부 연계 방식과 유사한 논리다.
한화가 KAI 지분을 5% 이상 확보하며 방산·항공우주 공급망을 재편하는 움직임과 함께 읽으면, 한국의 전략적 자산 확보 패턴이 더 선명하게 보인다. 방산, 에너지, 인프라 — 모두 정부 정책금융과 민간 기업이 연동하는 방식으로 해외에 투사되고 있다.
코리아엑심은행의 중앙아시아 전략: 경쟁자들은 누구인가
우즈베키스탄은 이미 치열한 경쟁 무대다. 중국은 일대일로(BRI)를 통해 인프라 투자를 선점했고, 러시아는 역사적 영향력을 유지하고 있다. 유럽연합은 '글로벌 게이트웨이(Global Gateway)' 프레임으로 중앙아시아에 접근 중이며, 일본도 ADB를 통해 존재감을 키우고 있다.
이 구도에서 코리아엑심은행의 포지셔닝은 흥미롭다. 한국은 중국처럼 지정학적 부담을 주지 않으면서도, 반도체·배터리·스마트시티 등 실질적인 기술 이전 능력을 갖춘 몇 안 되는 나라다. 우즈베키스탄 입장에서 한국과의 협력은 특정 강대국에 종속되지 않으면서 기술과 자본을 끌어오는 '균형 외교'의 일환일 가능성이 있다.
AI 기술 협력 조항이 포함된 것도 주목할 만하다. 우즈베키스탄은 2030년까지 디지털 경제 전환을 국가 목표로 설정했으며, 한국의 AI·핀테크 역량은 이 수요와 맞닿는다. 다만 AI 협력이 실제 프로젝트로 구체화되려면 데이터 거버넌스, 현지 인력 양성, 규제 환경 등 해결해야 할 과제가 적지 않다는 점에서, 현 단계에서는 방향 설정에 가깝다고 보는 것이 적절하다.
정책금융 MOU의 실효성: 낙관과 회의 사이
솔직히 말하자면, MOU는 역사적으로 실행률이 낮다. 특히 정책금융 기관 간 MOU는 구체적인 프로젝트 파이프라인과 예산 배정 없이는 선언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ADB 공식 데이터에서도 확인되듯, 우즈베키스탄은 최근 수년간 외국인 투자 유입이 증가했지만 실제 집행 속도는 여전히 행정 역량과 법제도의 제약을 받고 있다.
그러나 이번 MOU가 이전 협약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 두 가지다.
첫째, 정책금융 도구의 직접 연결이다. 황기연 행장이 강조한 "정책금융 도구를 양자협력 프로젝트에 직접 연결"한다는 표현은, 단순한 정보 공유를 넘어 대출·보증·투자 등 구체적인 금융 상품을 프로젝트에 묶겠다는 의지를 담고 있다.
둘째, 타이밍이다. ADB 연차총회라는 다자 무대에서 서명함으로써, 이 협약은 국제적 가시성을 확보했다. 제3국 투자자나 다자개발은행이 공동 참여를 검토할 수 있는 플랫폼이 마련된 셈이다.
투자자와 기업이 주목해야 할 시사점
이번 협약에서 실질적인 기회를 읽어내려면 세 가지 레이어를 분리해서 봐야 한다.
단기(1~2년): 타슈켄트 K-마루를 통해 현지 진출을 검토하는 한국 중견기업들에게 접근 비용이 낮아진다. 특히 스마트 그리드, 수처리, 신재생에너지 EPC(설계·조달·시공) 분야의 기업들이 수혜를 볼 가능성이 있다.
중기(3~5년): 에너지 전환 프로젝트가 본격화되면, 한국 배터리·태양광 기업들의 현지 공급망 편입 기회가 생긴다. 우즈베키스탄은 태양광 잠재량이 높은 국가로, 국제재생에너지기구(IRENA)도 중앙아시아 재생에너지 허브로서의 가능성을 평가한 바 있다.
장기(5년 이상): AI 기술 협력이 실질적인 디지털 인프라 수출로 연결될 경우, 한국 AI·클라우드 기업들의 중앙아시아 거점 확보 경로가 열린다. 다만 이 시나리오는 현지 데이터 주권 정책과 한국 기업의 현지화 역량에 달려 있다는 점에서 불확실성이 크다.
사마르칸트에서 서명된 이 MOU 한 장은, 공급망 재편과 에너지 전환이라는 두 개의 거대한 물결이 중앙아시아에서 교차하는 지점에 한국 정책금융이 닻을 내리려는 시도다. 코리아엑심은행이 이 닻을 실제 프로젝트로 연결할 수 있는지 여부가, 앞으로 2~3년 안에 가려질 것이다. 선언이 실행이 되는 순간을 지켜볼 필요가 있다.
Alex Kim
Former financial wire reporter covering Asia-Pacific tech and finance. Now an independent columnist bridging East and West perspectiv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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