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스티니안 역병이 요르단 집단 묘지에서 되살아났다: 1,500년 전 팬데믹이 오늘에 던지는 질문
요르단 제라시(Jerash)에서 발굴된 집단 묘지 하나가 고고학계를 넘어 공중보건과 사회과학 전반을 뒤흔들고 있다. 저스티니안 역병(Plague of Justinian, 541~750 CE)이 단순한 역사적 사건이 아니라, 사회 구조를 해체하고 재편하는 '시스템 충격'이었음을 유전자 분석과 고고학적 증거가 처음으로 동시에 입증했기 때문이다.
집단 묘지가 말해주는 것: 저스티니안 역병의 '인간 신호'
플로리다 대학교 사우스플로리다(USF)의 Rays H. Y. Jiang 교수 팀이 국제학술지 Journal of Archaeological Science에 발표한 연구는 세 가지 이유에서 주목할 만하다.
첫째, 증거의 이중 확인이다. 역사 기록에는 비잔틴 제국 전역에 걸친 대규모 사망이 기술되어 있지만, 지금까지 역병과의 연관성이 고고학적 증거와 유전자 분석 양쪽 모두로 확인된 집단 매장지는 없었다. 제라시 유적은 Yersinia pestis 세균의 DNA 검출과 매장 형태 분석이 동시에 이루어진 세계 최초의 역병 관련 집단 묘지다.
둘째, 매장의 속도다. 연구팀은 수백 명의 시신이 수일 내에 도시의 버려진 공공 공간, 구체적으로는 토기 잔해 위에 급하게 매장되었음을 확인했다. 이는 단순한 공동묘지의 점진적 형성과 구별되는 '단일 사건 매장'이다. 죽음이 행정 체계보다 빠르게 진행되었다는 뜻이다.
셋째, 이동 인구의 가시화다. 역사·유전자 데이터는 당시 사람들이 광범위하게 이동하며 교류했음을 보여주지만, 일반적인 묘지 증거는 오히려 지역 공동체의 폐쇄성을 시사하는 경우가 많았다. 제라시 집단 묘지는 이 모순을 해소한다.
"이주는 보통 세대에 걸쳐 천천히 이루어지며 일상에 녹아들어, 표준적인 매장지에서는 감지하기 어렵다. 그러나 위기 상황에서는 보다 이동성이 강한 배경을 가진 개인들이 한 곳에 모이게 되어, 그 숨겨진 연결고리가 가시화된다." — Rays H. Y. Jiang, USF 공중보건대학 부교수 (Journal of Archaeological Science, 2026)
"병원체를 넘어 사람으로": 팬데믹 연구의 패러다임 전환
이 연구가 흥미로운 이유는 단순히 '오래된 역병을 찾아냈다'는 데 있지 않다. Jiang 팀의 접근 방식은 기존 역병 연구의 지형을 바꾼다.
이전 시리즈 논문들은 주로 Yersinia pestis라는 병원체 자체를 식별하는 데 집중했다. 이번 세 번째 논문은 방향을 틀어 "누가 죽었는가, 어떻게 살았는가, 도시는 위기를 어떻게 경험했는가"를 묻는다.
"우리는 병원체를 식별하는 것을 넘어, 그것이 영향을 미친 사람들에 집중하고자 했다. 그들이 누구였는지, 어떻게 살았는지, 실제 도시 안에서 팬데믹으로 인한 죽음이 어떤 모습이었는지." — Jiang (Science Daily, 2026-04-23)
이 시각 전환은 현대 공중보건 담론에서도 중요하다. COVID-19 팬데믹 이후 전 세계 보건 당국이 가장 뼈아프게 배운 교훈 중 하나는, 감염병의 피해는 생물학적으로 균등하지 않다는 것이다. 이동 노동자, 다중 밀집 거주자, 의료 접근성이 낮은 집단이 불균형적으로 취약했다. 제라시의 집단 묘지는 이 패턴이 1,500년 전에도 동일하게 작동했음을 보여준다.
금융·지정학 저널리스트가 역병 연구에서 읽는 것
내 전문 영역은 아시아-태평양 금융 시장과 지정학이다. 그런데 이 연구는 예상치 못한 지점에서 내 관심을 끌었다.
팬데믹은 시스템 리셋 이벤트다. 역사적으로 대규모 감염병은 기존 권력 구조와 공급망을 재편하는 촉매였다. 저스티니안 역병은 비잔틴 제국의 재정적 기반을 약화시키고, 이후 이슬람 세력의 팽창을 간접적으로 가능하게 한 지정학적 변수로 평가받는다. 인구 감소는 세수 기반의 붕괴이고, 세수 붕괴는 군사력의 약화이며, 군사력의 약화는 영토의 재편이다.
이 논리는 현대에도 유효하다. COVID-19가 글로벌 공급망의 취약성을 드러내고, 각국이 반도체·의약품·식량 공급의 '자국화'에 나선 것은 우연이 아니다. 메누카우레 피라미드의 숨겨진 공동(空洞)에 관한 분석에서도 다루었듯이, 고대의 물리적 증거는 현대 시스템 설계에 놀라울 만큼 직접적인 시사점을 던진다.
이동성과 취약성의 상관관계도 중요하다. 제라시 연구는 이동 인구가 위기 시 집중적으로 피해를 입었음을 보여준다. 현대 금융 시스템에서도 유사한 패턴이 보인다. 플랫폼 노동자, 계약직, 국경을 넘나드는 이주 노동자 등 '유동 인구'는 사회 안전망의 사각지대에 놓인다. 팬데믹은 이 구조적 취약성을 단순히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증폭시킨다.
고대 DNA가 바꾸는 역사 서술: 더 넓은 맥락
이번 연구는 더 넓은 고고유전학(archaeogenetics) 혁명의 일부다. 같은 시기 Science Daily가 보도한 파리 근교 고분 연구에서는 고대 DNA 분석을 통해 기원전 3000년경 지역 집단이 외부 집단으로 완전히 대체된 사실이 확인되었다. 이집트 미라 CT 스캔 연구도 병행되고 있다. 이 세 연구를 함께 놓으면 하나의 공통 메시지가 보인다.
우리가 '역사'라고 부르는 것의 상당 부분은 아직 발굴되지 않은 생물학적 데이터 속에 잠들어 있다.
텍스트 기록은 권력자의 서사다. 집단 묘지의 DNA는 익명의 이동 노동자, 상인, 난민의 서사다. Jiang 교수의 표현처럼 "유전자 신호를 인간의 이야기로 전환"하는 작업은, 역사학과 공중보건학의 경계를 허물고 있다.
WHO의 팬데믹 대비 프레임워크가 강조하는 것도 결국 같은 지점이다. 감염병의 취약 집단은 생물학적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경제적·지리적 위치에 의해 구조적으로 만들어진다.
저스티니안 역병이 남긴 구조적 교훈
이 연구에서 실질적으로 끌어낼 수 있는 시사점은 세 가지다.
첫째, 팬데믹 대비 모델에 이동 인구를 명시적으로 포함해야 한다. 제라시의 집단 묘지는 정착 공동체가 아니라 유동 인구가 위기의 집중 피해자였음을 보여준다. 현대 방역 체계가 주민등록 기반으로 작동하는 한, 이 사각지대는 반복된다.
둘째, 도시 밀도와 이동성은 팬데믹 위험의 핵심 변수다. 연구팀은 "밀집된 도시, 이동, 환경 변화가 당시에도 역할을 했으며, 오늘날도 마찬가지"라고 명시했다. 이는 도시 설계와 공중보건 인프라 투자의 우선순위를 재고하게 한다.
셋째, 역사적 팬데믹 데이터는 현대 리스크 모델링의 입력값이 될 수 있다. 보험 산업과 국가 재난 대비 기관이 역사적 사망률 패턴을 더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는 논의가 COVID-19 이후 커지고 있다. 제라시 같은 유적지의 데이터는 단순한 학문적 성과가 아니라, 리스크 캘리브레이션의 원재료가 될 수 있다.
원문 기사 전문은 Science Daily에서 확인할 수 있다.
저스티니안 역병은 끝난 사건이 아니다. 그것이 남긴 패턴 — 이동 인구의 집중 피해, 도시 시스템의 급속한 붕괴, 사회 구조의 재편 — 은 2026년 현재에도 유효한 리스크 시나리오의 원형이다. 1,500년 전 요르단의 집단 묘지가 우리에게 보내는 메시지는 명확하다. 팬데믹은 취약한 사람들을 만들지 않는다. 이미 취약하게 만들어진 사람들을 드러낼 뿐이다.
아시아·태평양 시각: 왜 이 연구가 동아시아에도 유효한가
저스티니안 역병은 유럽과 지중해의 이야기로만 읽히기 쉽다. 그러나 6세기 비잔틴 제국의 무역 네트워크는 실크로드를 통해 중앙아시아, 중국 북부, 한반도까지 연결되어 있었다. Yersinia pestis의 유전자 계통 분석에 따르면, 당시 흑사병 균주의 기원은 중앙아시아 초원 지대로 추정된다. 제라시의 집단 묘지에 묻힌 이동 인구 중 일부는 바로 그 루트를 따라 이동한 상인이나 노동자였을 가능성이 높다.
이것은 단순한 역사적 호기심이 아니다. 오늘날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팬데믹 리스크 구조는 6세기와 놀랍도록 유사한 요소를 공유하고 있다.
중국의 이주 노동자(농민공) 규모는 2025년 기준 약 3억 명에 달한다. 이들은 도시 호적(후커우·戶口) 시스템 밖에 존재하며, 공식 방역 체계의 사각지대에 놓인다. COVID-19 초기, 우한에서 춘절 귀향길에 오른 이동 인구가 바이러스를 전국으로 확산시킨 경로는 제라시의 패턴과 구조적으로 다르지 않다. 이동 인구는 위험의 매개자가 아니라, 구조적 취약성의 담지자였다.
동남아시아의 상황은 더 복잡하다. 말레이시아·태국·싱가포르의 외국인 이주 노동자 수는 각국 인구의 10~20%에 달하며, 이들의 주거 밀도와 의료 접근성은 정주 시민과 현격한 격차를 보인다. 2020년 싱가포르의 2차 확산이 외국인 노동자 기숙사에서 시작된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그것은 시스템이 설계한 취약성이 표면으로 드러난 사건이었다.
고고유전학과 핀테크: 예상치 못한 교차점
이 지점에서 나는 내가 오랫동안 추적해온 또 다른 주제와의 연결고리를 발견한다. 금융 인프라와 데이터, 그리고 리스크 모델링이다.
앞서 언급했듯, 역사적 팬데믹 데이터를 현대 리스크 캘리브레이션에 활용해야 한다는 논의가 COVID-19 이후 보험 산업과 재난 대비 기관 사이에서 커지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 핵심적인 병목이 하나 있다. 데이터의 해상도 문제다.
전통적인 역학(疫學) 데이터는 집계 단위가 너무 크다. 국가별·도시별 사망률은 알 수 있어도, 누가 왜 더 많이 죽었는지의 구조는 보이지 않는다. 제라시 연구가 보여준 것처럼, 이동 인구와 정주 인구의 사망 패턴은 같은 도시 안에서도 극명하게 갈린다. 이 차이를 식별할 수 있는 데이터는 전통적인 인구 통계에는 없다.
흥미롭게도, 이 해상도 문제를 부분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도구가 핀테크 영역에서 나오고 있다. 모바일 결제 데이터, 위치 기반 금융 거래 패턴, 비공식 경제의 디지털 흔적 — 이것들은 공식 통계에 잡히지 않는 이동 인구의 행동 궤적을 실시간으로 추적할 수 있는 신호다. 내가 이전에 분석했던 "금융 인프라의 유틸리티 레이어화" 논의가 여기서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접점을 만든다. 행동 데이터의 부산물(data exhaust)은 단순히 신용 평가의 원료가 아니라, 공중보건 리스크 지도를 그리는 원료가 될 수 있다.
물론 이 논의에는 즉각적인 반론이 따른다. 프라이버시 침해, 감시 자본주의로의 전용 가능성, 그리고 취약 집단에 대한 데이터 착취. 이 우려들은 정당하다. 그러나 그 우려가 데이터 활용 자체를 봉쇄하는 방향으로 작동해서는 안 된다. 필요한 것은 사용 목적의 제한(purpose limitation)과 거버넌스 구조이지, 데이터의 부재가 아니다.
결론: 1,500년의 시차를 넘어
제라시의 집단 묘지에서 추출한 고대 DNA는 단순히 과거를 복원하지 않는다. 그것은 현재의 시스템이 어떤 방식으로 취약성을 생산하는지를 묻는 거울이다.
6세기 요르단의 이동 노동자들은 호적도, 사회보험도, 의료 기록도 없었다. 그들은 역사 서술에서 지워졌고, 방역 체계에서도 지워졌다. 그 결과는 집단 묘지였다. 2026년 현재, 우리는 그들의 이름을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그들의 유전자를 읽을 수 있게 되었다.
문제는 기술이 아니다. 의지의 문제다.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것 — 이동 인구가 팬데믹에서 구조적으로 더 취약하다는 사실 — 을 정책 설계에 반영하는 데 왜 1,500년이 걸려야 하는가.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보건 당국과 금융 규제 기관, 그리고 도시 계획가들이 이 연구를 단순한 고고학 뉴스로 넘기지 않기를 바란다. 제라시의 데이터가 보여주는 패턴은 오늘날 방콕의 이주 노동자 밀집 지역에서도, 광저우의 도시 외곽 임시 거주지에서도, 자카르타의 비공식 정착지에서도 그대로 재현될 준비가 되어 있다.
역사는 반복되지 않는다고들 한다. 하지만 구조는 반복된다. 그리고 구조를 바꾸는 것은 유전자 분석이 아니라, 그 분석 결과를 읽고 행동하기로 선택한 사람들의 몫이다.
이 글은 Science Daily의 저스티니안 역병 관련 연구 보도를 바탕으로, 아시아·태평양 시장 및 공중보건 리스크 관점에서 분석한 칼럼입니다. Alex Kim은 아시아·태평양 금융 및 기술 시장을 전문으로 취재해온 독립 칼럼니스트입니다.
Alex Kim
Former financial wire reporter covering Asia-Pacific tech and finance. Now an independent columnist bridging East and West perspectiv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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