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고교생 피살이 드러낸 '안전의 경제학': 치안 공백이 서민 물가만큼 무겁다
광주 고교생 피살 사건과 중동발 물가 불안이 동시에 청와대 수석보좌관 회의 테이블 위에 올랐다는 사실은, 표면적으로는 무관해 보이는 두 이슈가 실은 같은 뿌리—국가가 시민의 일상을 얼마나 안전하게 보장할 수 있는가—를 공유하고 있음을 방증한다.
강훈식 대통령 비서실장의 발언은 그 자체로 정책 신호다. 단순한 조문이나 위로의 언어가 아니라, 경찰청에 순찰 강화와 통학로 안전진단, 방범 시설 보강을 공식 지시하고, 전성환 경청통합수석을 즉시 현장으로 보낸 행정적 움직임이 뒤따랐다. 20년 넘게 거시경제 흐름을 추적해온 나로서는, 이런 종류의 정책 반응이 어떤 경제적 신호를 내포하는지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광주 고교생 피살 사건: 기사가 말하지 않는 '안전 인프라'의 경제적 비용
2026년 5월 5일 오전 0시 11분, 광주 광산구 한 보행자도로에서 고등학교 2학년 A(17) 양이 흉기에 피살되고 동갑내기 B 군이 부상을 입었다. 가해자 장 모(24) 씨는 현재 살인·살인미수 혐의로 구속 조사 중이다.
이 사건을 단순한 사회면 기사로 읽으면 절반밖에 보지 못한다.
경제학적 시각에서 '안전'은 공공재(public good)의 전형이다. 비경합성과 비배제성을 동시에 지니며, 시장이 자생적으로 공급하기 어렵기 때문에 국가가 개입해야 한다. 방범 시설, 순찰 인력, 통학로 안전진단은 모두 이 공공재 공급의 구체적 형태다. 그런데 한국의 치안 예산 배분 구조를 보면, 도심 상업지구와 주거 밀집 지역에 방범 자원이 집중되는 반면 심야 시간대 외곽 보행자도로는 구조적 공백 지대로 남아 있는 경우가 많다.
"이번 사건을 결코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된다." — 강훈식 대통령 비서실장 (SBS 뉴스, 2026.05.11)
이 발언의 행간을 읽어야 한다. "가볍게 여겨선 안 된다"는 표현은, 역설적으로 이런 종류의 사건이 그동안 충분히 무겁게 다뤄지지 않았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한겨레 보도에 따르면 강 실장은 학생들의 가해자 엄벌 촉구 성명서를 직접 언급하며 "청소년과 약자의 안전 문제가 소홀히 다뤄져왔다"는 인식을 드러냈다. 이는 단순한 사후 대응이 아니라, 구조적 치안 공백에 대한 정책적 자기반성에 가깝다.
치안 공백의 경제적 도미노 효과
경제학에서 범죄율과 지역 경제 활력 사이의 상관관계는 오래전부터 실증 연구의 대상이었다. 1990년대 뉴욕시의 '깨진 유리창 이론(Broken Windows Theory)' 기반 치안 정책이 도시 재생과 부동산 가치 상승으로 이어진 사례는 교과서적이다. 반대로 치안 불안이 지속될 경우, 지역 상권 위축 → 부동산 가치 하락 → 세수 감소 → 공공서비스 축소라는 경제적 도미노 효과가 작동한다.
광주 광산구의 이번 사건이 단발성 범죄로 마무리된다면 지역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일 수 있다. 그러나 만약 이것이 치안 인프라 투자 부족의 징후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학부모들의 심야 외출 기피, 학원가 매출 감소, 나아가 해당 지역 주거 선호도 하락까지 이어질 수 있는 연쇄 반응—이것이 내가 말하는 '안전의 경제학'이다.
실제로 OECD의 2023년 사회적 결속 보고서는 체감 안전도(perceived safety)가 낮은 지역일수록 소비 지출과 지역 내 투자가 위축된다는 분석을 제시한 바 있다. 숫자로 환산하면, 체감 안전도 10% 하락이 지역 소매 매출의 약 3~5% 감소와 통계적으로 연관된다는 추정치도 있다. 이는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수치다.
같은 회의 테이블: 물가와 안전이 만나는 지점
"물가와의 전쟁은 이제부터 시작이라는 각오로 국제유가 상승을 빌미로 한 과도한 가격 인상을 차단하고 서민물가 안정에 총력을 다해달라." — 강훈식 대통령 비서실장 (SBS 뉴스, 2026.05.11)
같은 날, 같은 회의에서 나온 이 발언은 중동전쟁의 장기화가 유가를 통해 국내 물가 전반에 압력을 가하고 있음을 정부가 공식 인지했다는 신호다. 내가 이전에 분석했던 LCC 항공사의 연료비 구조 문제와도 맥이 닿아 있다. 유가 상승은 항공, 물류, 식품 가공 등 에너지 집약 산업 전반의 비용을 끌어올리고, 그 부담은 결국 소비자 물가로 전가된다.
흥미로운 것은 이 두 이슈—치안과 물가—가 사실상 같은 정책적 딜레마를 공유한다는 점이다. 둘 다 서민의 일상 체감 경제에 직접 타격을 준다. 물가가 오르면 가처분소득이 줄고, 치안이 불안하면 삶의 질이 떨어진다. 경제학 용어로는 '실질 생활 수준(real standard of living)'의 양면이다.
그런데 정책 자원 배분의 관점에서 보면, 치안 인프라 투자는 물가 안정 대책보다 훨씬 긴 시간 지평을 요구한다. 방범 카메라 증설, 순찰 인력 확충, 통학로 안전진단 시스템 구축은 단기 재정 지출이지만, 그 효과는 수년에 걸쳐 누적된다. 반면 물가 대응은 비축유 방출이나 유통 마진 규제처럼 단기 처방이 가능하다. 이 비대칭성이 정책 우선순위 설정을 어렵게 만드는 구조적 요인이다.
방범 인프라 투자, '비용'이 아닌 '수익률'로 읽어야 한다
한국 정부의 방범 인프라 투자 현황을 보면, CCTV 설치 대수는 세계 최고 수준이지만 심야 시간대 인력 기반 순찰은 상대적으로 취약하다는 평가가 있다. 기술 기반 감시와 인력 기반 예방 사이의 불균형이다.
경제학적으로 이 문제를 접근하면, 방범 인프라 투자의 사회적 수익률(social return on investment)은 단순 비용 절감 이상이다. 범죄 예방으로 절감되는 사법 처리 비용, 피해자 의료비, 생산성 손실, 지역 경제 활성화 효과를 모두 합산하면, 방범 인프라 1원 투자의 사회적 수익률은 통상 3~7원 수준이라는 연구 결과들이 있다. 이는 웬만한 SOC 투자보다 높은 수치다.
강 실장이 지시한 "통학로 안전진단 및 방범 시설 보강"이 일회성 이벤트에 그치지 않으려면, 이를 지역 안전 인프라 예산의 구조적 확대로 연결해야 한다. 6·3 지방선거를 앞두고—강 실장이 공직자 정치 중립을 강조한 것도 이 맥락이다—지방자치단체의 안전 예산 배분이 선거 이후에도 지속될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이 필요하다.
이 지점에서 삼성전자 노사분쟁이 한국의 투자 환경 신뢰도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하며 내가 강조했던 논점—제도의 신뢰성이 경제적 가치를 창출한다—이 여기서도 유효하다. 치안 제도의 신뢰성 역시 지역 경제와 투자 환경의 기반이다.
독자를 위한 관점 전환: 안전을 '복지'가 아닌 '인프라'로 읽어라
이 사건을 바라보는 시각을 하나 제안하고 싶다. 우리는 흔히 치안을 '복지'의 범주에 넣어 논의한다. 그러나 경제적 분석 틀에서 보면 치안은 생산 인프라에 가깝다. 도로가 없으면 물류가 마비되듯, 안전이 보장되지 않으면 노동력의 이동과 소비 활동이 위축된다.
광주 고교생 피살 사건이 촉발한 정책 반응이 순찰 강화와 방범 시설 보강에 그친다면, 이는 악보의 한 마디만 연주하고 멈추는 것과 같다. 글로벌 금융 경제의 교향악적 흐름 속에서, 지역 안전 인프라는 결코 독주가 아니다—그것은 전체 오케스트라의 음정을 받쳐주는 저음부다.
실행 가능한 시사점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 지방자치단체 차원: 안전 예산을 선거 주기에 종속시키지 않는 중기 재정 계획 수립이 필요하다.
- 중앙정부 차원: 치안 인프라 투자의 사회적 수익률을 공식 평가 지표로 도입해, 예산 배분의 근거를 감성적 반응이 아닌 데이터 기반으로 전환해야 한다.
- 시민 차원: 지역 안전 수준을 부동산 가치나 교육 환경과 동등한 생활 인프라 지표로 인식하고, 지방선거에서 이를 평가 기준으로 삼을 필요가 있다.
그랜드 체스판의 비유를 빌리자면, 치안은 체스의 폰(pawn)처럼 보이지만 실은 게임의 구조 자체를 결정하는 말이다. 그것을 잃었을 때 비로소 그 무게를 실감하는 것이, 우리가 반복해온 실수다. 광주의 비극이 그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는 계기가 되기를, 데이터와 정책 모두가 뒷받침하는 방식으로 기대한다.
이코노
경제학과 국제금융을 전공한 20년차 경제 칼럼니스트. 글로벌 경제 흐름을 날카롭게 분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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