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베디드 파이낸스가 '금융 앱'을 죽이고 있다 — 당신이 모르는 사이 이미 시작된 일
2025년, 한국의 20대 직장인 김모 씨는 한 달에 단 한 번도 은행 앱을 열지 않는다. 쿠팡에서 할부를 긋고, 토스에서 보험을 들고, 네이버페이로 적금을 넣는다. 그에게 "금융"은 별도의 행위가 아니다. 쇼핑하다가, 배달시키다가, 그냥 일어나는 일이다.
이것이 임베디드 파이낸스(Embedded Finance)의 본질이다. 그리고 이 흐름은 지금 아시아-태평양 전역에서 기존 금융 산업의 수익 구조를 조용히, 그러나 빠르게 잠식하고 있다.
임베디드 파이낸스란 무엇인가 — 그리고 왜 지금인가
임베디드 파이낸스는 새로운 개념이 아니다. 백화점 카드, 항공사 마일리지 카드는 이미 수십 년 전부터 존재했다. 하지만 지금 일어나는 일은 규모와 구조가 근본적으로 다르다.
과거에는 "비금융 기업이 금융 상품을 끼워 팔았다"면, 지금은 "금융 기능이 비금융 플랫폼의 핵심 인프라로 녹아들었다." API 경제의 성숙, 클라우드 기반 뱅킹 코어(Banking-as-a-Service, BaaS), 그리고 규제 샌드박스의 확산이 이 전환을 가속했다.
글로벌 시장조사기관 Juniper Research는 2024년 기준 임베디드 파이낸스 시장 규모를 약 1,380억 달러로 추정하며, 2028년까지 5,880억 달러를 넘어설 것으로 전망했다. 연평균 성장률(CAGR) 43%에 가까운 수치다. 이것은 핀테크 섹터 전체가 아니라, 임베디드 파이낸스 단일 카테고리의 숫자다.
아시아가 왜 이 게임의 진원지인가
서구 금융 시장에서 임베디드 파이낸스는 기존 인프라를 "우회"하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하지만 아시아-태평양, 특히 동남아시아와 한국에서는 맥락이 다르다.
첫째, 슈퍼앱 생태계가 이미 존재한다. 그랩(Grab), 고젝(Gojek), 카카오, 네이버는 단순한 플랫폼이 아니다. 이들은 수억 명의 일상 행동 데이터를 보유한 금융 인프라다. 그랩파이낸셜은 동남아시아 6개국에서 대출, 보험, 투자 서비스를 운영하며, 2023년 기준 그랩의 전체 매출에서 금융 서비스 부문이 차지하는 비중은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둘째, 은행 계좌 미보유 인구(Unbanked Population)가 크다. 세계은행 데이터에 따르면 동남아시아 성인 인구의 약 30~40%가 여전히 전통 금융 서비스에 접근하지 못한다. 이들에게 임베디드 파이낸스는 "기존 은행의 대안"이 아니라 "생애 최초의 금융 접근"이다. 이 차이가 아시아 시장을 글로벌 임베디드 파이낸스 혁신의 최전선으로 만든다.
셋째, 한국의 경우는 다른 의미에서 흥미롭다. 한국은 은행 침투율이 높고 금융 인프라가 성숙한 시장이다. 그런데도 토스(Toss)가 2,200만 명의 월간 활성 사용자를 보유하고, 네이버파이낸셜이 연간 수조 원의 대출을 집행한다. 이것은 "기존 금융이 나빠서"가 아니라, "비금융 맥락에서 금융이 더 자연스럽기 때문"이다.
세 가지 핵심 트렌드: 지금 실제로 일어나는 일
1. BNPL의 진화 — "할부"에서 "신용 인프라"로
Buy Now Pay Later(BNPL)는 이미 진부한 단어가 됐다. 하지만 그 다음 단계가 흥미롭다. 아시아 시장에서 BNPL은 단순 결제 옵션을 넘어 신용 데이터 레이어로 진화하고 있다.
아마존의 인도 파트너사 Capital Float, 싱가포르의 Atome 등은 BNPL 거래 데이터를 기반으로 중소상공인(SME) 대출 심사 모델을 구축했다. 전통 신용평가 기관이 포착하지 못하는 "행동 신용(behavioral credit)"을 BNPL 데이터로 대체하는 것이다.
한국에서는 네이버페이 후불결제가 2021년 출시 이후 빠르게 확산되며, 사실상 네이버 쇼핑 생태계 내 신용 인프라로 기능하고 있다. 이 데이터가 향후 네이버파이낸셜의 대출 심사에 어떻게 활용될지는 — 공식적으로 밝혀진 바는 없지만 — 업계에서는 이미 기정사실처럼 받아들여진다.
2. BaaS(Banking-as-a-Service) — 금융의 AWS화
가장 과소평가된 트렌드다. BaaS는 비금융 기업이 인가 취득 없이 금융 기능을 서비스에 내장할 수 있게 해주는 인프라다. 쉽게 말해 "금융의 AWS"다.
한국의 경우 금융위원회의 마이데이터 사업자 제도와 오픈뱅킹 인프라가 사실상 BaaS의 규제 기반을 제공했다. 이를 통해 핀다(Finda), 핀크(Finnq) 같은 플레이어들이 은행 코어 시스템에 접근하지 않고도 대출 비교, 자산 관리 서비스를 구축할 수 있었다.
글로벌 관점에서 더 극적인 사례는 싱가포르다. MAS(싱가포르 통화청)가 2020년 디지털 뱅킹 라이선스를 발급하면서, 그랩과 씨(Sea Limited)가 각각 GXS Bank와 MariBank를 설립했다. 이 두 은행은 처음부터 "임베디드 금융 인프라"로 설계됐다. 지점이 없고, 앱이 없으며, 다른 플랫폼 안에 녹아드는 것이 비즈니스 모델이다.
3. AI 언더라이팅 — 신용의 민주화인가, 새로운 차별인가
임베디드 파이낸스의 확산과 함께 AI 기반 신용 심사가 주류가 되고 있다. 문제는 이것이 가져오는 불확실성이다.
앤트그룹(Ant Group)의 화베이(Huabei)와 제베이(Jiebei)는 알리바바 생태계 내 행동 데이터(구매 패턴, 배달 주소 일관성, 앱 사용 시간대까지)를 신용 심사에 활용했다. 이 모델은 금융 소외 계층에게 신용 접근을 제공했다는 점에서 혁신적이었지만, 동시에 중국 당국의 강도 높은 규제를 촉발했다.
"The line between financial inclusion and surveillance capitalism in credit scoring is thinner than most regulators are willing to admit." — BIS Working Paper, 2023
이 딜레마는 아시아 전역에서 현재 진행형이다. 인도의 RBI(인도중앙은행)는 2023년 AI 기반 대출 플랫폼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강화했고, 한국 금융당국도 마이데이터 활용 범위와 AI 심사 모델의 설명가능성(explainability) 요건을 지속적으로 검토 중이다.
기존 금융기관에게 이것이 의미하는 것
한양증권 같은 중소 금융기관이 리테일 강화에 사활을 거는 맥락도 여기서 읽힌다. 임베디드 파이낸스의 확산은 "고객이 금융기관을 찾아오는 시대"의 종말을 의미한다. 고객은 이제 쇼핑하다가, 배달시키다가, 게임하다가 금융 서비스를 소비한다.
전통 금융기관이 선택할 수 있는 경로는 크게 세 가지다:
- 인프라 제공자(Infrastructure Player)로 전환 — BaaS 레이어를 제공하며 비금융 플랫폼의 백엔드가 된다. 수익성은 낮지만 규모는 크다.
- 데이터 우위 구축 — 임베디드 파이낸스 플레이어가 가지지 못한 장기 금융 데이터(대출 상환 이력, 자산 변화 추이)를 무기로 복잡한 금융 상품(모기지, 기업 대출)에 집중한다.
- 플랫폼화 — 직접 슈퍼앱을 구축하거나 비금융 서비스와 결합한다. 카카오뱅크, KB국민은행의 리브(Liiv) 같은 시도가 여기에 해당하지만, 성공 사례는 아직 제한적이다.
문제는 대부분의 전통 금융기관이 이 세 가지 중 어느 것도 명확히 선택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디지털 전환"이라는 이름 아래 앱 UI를 개선하고 챗봇을 붙이는 것은, 임베디드 파이낸스의 구조적 도전에 대한 답이 아니다.
실무자를 위한 세 가지 체크포인트
이 흐름을 금융업, 테크업, 혹은 투자자 관점에서 추적하고 있다면 다음 세 가지 질문이 유효하다.
① 당신의 서비스에서 '금융 마찰(financial friction)'은 어디에 있는가? 임베디드 파이낸스의 기회는 항상 "결제하려고 앱을 나가야 하는 순간", "신용 조회를 위해 별도 서류를 내야 하는 순간"에 있다. 그 마찰 지점을 찾는 것이 시작이다.
② 규제 환경의 변화 속도를 추적하고 있는가? 한국 금융위원회의 마이데이터 2.0 논의, MAS의 디지털 뱅킹 규제 업데이트, 인도 RBI의 핀테크 가이드라인 — 이 세 시장의 규제 방향이 아시아 임베디드 파이낸스의 속도를 결정한다. 규제는 리스크이기도 하지만, 먼저 준비한 플레이어에게는 진입 장벽이 된다.
③ 데이터 소유권 논쟁의 귀추를 주목하라. 임베디드 파이낸스의 핵심 자산은 결국 행동 데이터다. EU의 DORA(디지털 운영 회복력법), 한국의 개인정보보호법 개정 논의, 중국의 데이터 3법 — 이 규제들이 "누가 데이터를 소유하는가"를 재정의하면, 임베디드 파이낸스의 수익 구조 전체가 재편될 수 있다.
임베디드 파이낸스는 "핀테크의 다음 단계"가 아니다. 그것은 금융이 독립된 산업으로 존재하는 방식 자체에 대한 도전이다. 금융 기능이 모든 디지털 서비스에 녹아드는 세계에서, "금융 회사"라는 카테고리가 지금과 같은 형태로 존재할 이유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
그 속도가 얼마나 빠를지는 — 솔직히 — 아무도 정확히 알 수 없다. 하지만 방향은 이미 정해졌다. 김모 씨가 이번 달에도 은행 앱을 열지 않는 한.
Alex Kim
Former financial wire reporter covering Asia-Pacific tech and finance. Now an independent columnist bridging East and West perspectiv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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