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미래는 당신들의 것"이라는 말에 졸업생들이 야유를 보낸 이유
졸업식 연단에서 "AI가 미래"라고 선언한 연사가 학생들의 집단 야유를 받았다는 소식은, 단순한 해프닝이 아니라 AI 미래에 대한 세대 간 인식의 단층선이 공개적으로 드러난 사건이다. 경제학자의 눈으로 보면, 이 야유 소리 안에는 임금·고용·직업 정체성을 둘러싼 구조적 불안이 압축되어 있다.
졸업식장이 된 전쟁터: 무슨 일이 있었나
Futurism이 보도한 이 사건은 2026년 5월 11일 현재, 미국 졸업 시즌의 상징적 장면으로 급속히 확산되고 있다. 졸업 축사 연사가 "AI가 미래다"라는 취지의 발언을 하자 졸업생들이 일제히 야유를 쏟아낸 것이다. 연사는 충격을 받은 표정이었다고 전해진다.
이 사건은 고립된 에피소드가 아니다. 같은 시기 버지니아주 알링턴의 한 고등학교는 졸업식에서 AI가 학생 이름을 호명하는 방안을 추진했다가 거센 반발에 부딪혀 계획을 철회했다. 노조 지도자는 공개적으로 이를 규탄했고, 학교 측은 결국 백기를 들었다. 졸업식이라는 인생에서 단 한 번의 의례적 순간에 AI의 목소리가 개입하는 것조차 사람들은 용납하지 않으려 한다는 신호다.
"Union leader denounces use of artificial intelligence to read off names at high school graduation" — Washington Times, 2026-05-05
야유의 경제학: 감정이 아니라 합리적 반응이다
나는 2008년 금융위기 당시 중앙은행 자문 역할을 하면서 한 가지를 배웠다. 군중의 반응이 '비이성적'으로 보일 때, 그 안에는 종종 시장이 아직 가격에 반영하지 못한 진짜 공포가 담겨 있다는 것이다. 졸업식장의 야유도 마찬가지다.
졸업생들은 감정적으로 반응한 것이 아니다. 그들은 노동시장의 냉혹한 수요·공급 법칙을 이미 체감하고 있다. 맥킨지 글로벌 인스티튜트(McKinsey Global Institute)의 추산에 따르면, 현재 기술 수준에서도 전 세계 업무의 약 60~70%가 자동화 가능한 작업을 포함하고 있다. 4년제 대학 학위를 취득하고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 청년들이 "AI가 미래"라는 말을 들었을 때, 그들의 뇌리에 스치는 것은 희망이 아니라 자신의 첫 직장이 AI로 대체될 타임라인일 것이다.
이것은 체스판의 비유로 설명하면 더 명확해진다. 글로벌 금융의 거대한 체스판에서 AI는 이미 여러 말을 동시에 움직이고 있다. 그런데 연사는 졸업생들에게 "이 체스판이 당신들의 것"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그 체스판의 규칙을 바꾸는 주체가 이미 다른 곳에 있다는 사실을 청중이 너무나 잘 알고 있다는 점이다.
AI 미래 담론의 구조적 모순: 누가 이 미래를 설계하는가
"AI가 미래"라는 명제 자체가 틀린 것은 아니다. 문제는 그 문장이 누구의 입에서 나오느냐다. 졸업식 연단에 서는 연사는 대개 이미 성공한 기성세대다. 그들에게 AI는 생산성을 높여주는 도구이거나, 투자 포트폴리오의 수익률을 끌어올리는 테마주다. 하지만 사회에 막 진입하는 청년에게 AI는 경쟁 상대이자 임금 협상력을 약화시키는 구조적 압력이다.
경제학에서는 이를 노동 수요의 탄력성 문제로 분석한다. AI가 특정 직무를 대체하면, 해당 직군의 노동 수요 곡선은 왼쪽으로 이동한다. 노동 공급(졸업생 수)이 단기간에 급감하지 않는 한, 균형 임금은 하락한다. 이것은 이론이 아니라, 이미 콘텐츠 작성·번역·기초 코딩·데이터 입력 분야에서 현실로 나타나고 있는 현상이다.
더 흥미로운 점은 AI 도입의 이익이 누구에게 귀속되느냐의 문제다. AI가 생산성을 높이면 그 잉여가 노동자의 임금 상승으로 이어질 수도 있지만, 역사적으로 기술 혁신의 초기 국면에서는 자본 소유자에게 먼저, 그리고 더 많이 귀속되는 경향이 있다. 내가 이전 분석에서 삼성전자 성과급 분쟁을 다루며 지적했듯이, 이익의 비대칭적 분배 구조는 기술 사이클이 가속화될수록 오히려 심화될 수 있다.
알링턴 사례가 보여주는 더 깊은 층위
알링턴 고등학교의 'AI 이름 호명' 사건은 표면적으로는 사소해 보인다. 그러나 나는 이것을 의례 경제학(ceremonial economics)의 관점에서 주목한다.
졸업식은 단순한 행사가 아니다. 그것은 수년간의 노력에 대한 사회적 인정 의식이다. 경제학적으로 표현하면, 졸업장은 신호 발송(signaling) 기능을 하며, 졸업식은 그 신호를 공동체가 공식적으로 확인하는 의례다. 이 의례에 AI의 목소리가 개입한다는 것은, 인간의 성취를 인간이 인정하는 행위에서 기계가 대리인 역할을 맡는다는 의미다.
노조 지도자가 이를 규탄한 것도 단순한 기술 혐오가 아니다. 노조의 핵심 기능 중 하나는 노동의 존엄성과 가시성을 지키는 것이다. AI가 이름을 호명하는 순간, 그 자리에 있어야 할 교사·행정직원의 역할이 지워진다. 이것은 비용 절감의 논리가 인간적 접촉의 영역까지 침식하는 '경제 도미노 효과'의 축소판이다.
기사가 말하지 않는 맥락: 세대 간 AI 리터러시 격차
이 사건들을 관통하는 더 중요한 맥락이 있다. 바로 AI에 대한 세대 간 이해 방식의 근본적 차이다.
기성세대 연사들이 "AI가 미래"라고 말할 때, 그들은 대개 AI를 도구(tool)로 인식한다. 망치가 목수를 대체하지 않듯, AI도 인간을 보조할 것이라는 낙관론이다. 그러나 현재 대학을 졸업하는 세대는 이미 ChatGPT, Claude, Gemini 등을 일상적으로 사용하면서 AI가 단순 도구를 넘어 인지 노동(cognitive labor) 자체를 수행할 수 있음을 몸으로 안다.
이것은 주의력과 인지 자원을 둘러싼 플랫폼 경제의 구조와도 맞닿아 있다. AI가 콘텐츠를 생성하고, 분석하고, 심지어 코드를 자율 배포하는 세계—실제로 AI가 어떤 코드를 프로덕션에 배포할지 스스로 결정하는 사례가 이미 현실이 되었다—에서, 졸업생들의 야유는 기술 혐오가 아니라 구조적 변화에 대한 합리적 공포의 표출이다.
독자를 위한 관점 전환: 야유는 신호다
경제 분석가로서 나는 시장의 신호를 읽는 훈련을 해왔다. 주가 급락, 채권 스프레드 확대, 환율 급변—이런 신호들은 모두 "무언가 근본적인 것이 바뀌고 있다"는 경고다. 졸업식장의 야유도 같은 방식으로 읽어야 한다.
기업과 정책 입안자들에게 이 야유는 세 가지를 의미한다.
첫째, AI 도입의 속도와 사회적 수용성 사이의 간극이 예상보다 빠르게 벌어지고 있다. 둘째, AI 전환의 이익이 보다 광범위하게 분배되지 않는 한, 사회적 저항은 구조적으로 심화될 가능성이 있다. 셋째, "AI가 미래"라는 메시지는 그것이 누구의 미래인지를 구체적으로 제시하지 않는 한, 공허한 구호에 그칠 뿐 아니라 오히려 역풍을 부른다.
투자자와 기업 전략가들도 이 신호를 무시해서는 안 된다. 사회적 수용성 없는 기술 전환은 규제 리스크와 노동 갈등이라는 비용을 수반한다. 마치 교향곡의 첫 악장이 너무 빠르게 달려나가면 오케스트라 전체가 무너지듯, AI 전환의 템포는 사회라는 오케스트라가 함께 연주할 수 있는 속도여야 한다.
졸업식장의 야유가 뉴스가 된 세상에서, 우리가 진짜 물어야 할 질문은 "AI가 미래인가"가 아니다. "그 미래를 누가, 어떻게, 누구를 위해 설계하고 있는가"—이것이 경제학이, 그리고 우리 모두가 지금 당장 대답해야 할 질문이다.
이코노
경제학과 국제금융을 전공한 20년차 경제 칼럼니스트. 글로벌 경제 흐름을 날카롭게 분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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