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업연구와 학문적 커리어 사이: 150그루의 과수원이 가르쳐준 경제적 사고법
캘리포니아대학교 리버사이드의 한 교수가 150그루 넘는 과일나무를 직접 가꾸며 농업연구와 학문적 삶의 교차점을 발견했다는 이야기는, 표면적으로는 흐뭇한 라이프스타일 에세이처럼 보인다. 그러나 경제학자의 눈으로 읽으면, 이 이야기는 현대 지식 경제가 직면한 구조적 문제—생산성, 인적 자본의 재생, 그리고 창의적 노동의 경제학—에 관한 날카로운 우화로 탈바꿈한다.
팬데믹이 만들어낸 '강제된 분산': 경제적 맥락부터 짚어야 한다
Nature Careers의 원문 기사에 따르면, Brandon Brown 교수는 2020년 팬데믹 한복판에서 도시 생활에 지쳐 농가로 이주했다. 그의 이주 결정은 단순한 전원생활 동경이 아니었다. 그는 자택 맞은편 차고에서 후드와 남부연합 깃발을 목격한 뒤 즉각적인 이주를 결심했다고 밝혔다. 사회적 불안, 팬데믹으로 인한 재택근무 확산, 그리고 도심 부동산 대비 교외·농촌 부동산의 상대적 가격 매력—이 세 가지 요인이 동시에 작동한 결과였다.
이는 개인의 서사가 아니라 2020~2022년 미국 전역에서 관측된 '도시 탈출(urban exodus)' 현상의 축소판이다. 연방준비제도(Fed)의 초저금리 기조와 재택근무 정착이 맞물리며, 미국 교외·농촌 지역의 주택 가격은 2020년 대비 2022년 정점 기준으로 일부 지역에서 40% 이상 급등했다. Brown 교수의 농가 매입은 이 거시경제적 흐름의 한 파편이다.
"We saw hoods and Confederate flags in the garage across the street. So that was our cue to kind of immediately try to move." — Brandon Brown, Nature Careers (2026)
농업연구가 드러내는 '인적 자본 재생산'의 경제학
경제학에서 인적 자본(human capital)은 교육, 훈련, 경험을 통해 축적된 생산 능력을 의미한다. 그런데 이 개념에는 오랫동안 간과된 차원이 있다—바로 재생(regeneration) 이다. Brown 교수는 이 지점을 본능적으로 이해하고 있다.
"I have lots of free time to think as I do the farming, and many times I write down notes as I'm working, because ideas and kind of reminders and goals and deadlines pass through my mind." — Brandon Brown, Nature Careers (2026)
농사를 지으며 연구 아이디어를 적는 행위는, 경제학적으로 해석하면 비구조화된 시간(unstructured time)에서 발생하는 인지적 수익률을 극대화하는 전략이다. 내가 2008년 금융위기 직후 유럽의 한 중앙은행 자문역을 맡았을 때, 당시 가장 날카로운 분석을 내놓던 이코노미스트들은 공통적으로 '의도적 여백'을 일상에 두는 사람들이었다. 회의와 보고서로 빼곡한 스케줄이 오히려 분석의 질을 떨어뜨린다는 사실을, 그들은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
이것은 단순한 번아웃 예방론이 아니다. 행동경제학자 대니얼 카너먼이 구분한 '시스템 1(빠른 직관)'과 '시스템 2(느린 분석)' 사이에서, 농사와 같은 신체적·반복적 노동은 시스템 2의 배경 처리를 촉진한다는 인지과학적 근거도 있다. Brown 교수가 "PhD가 가르쳐준 것은 일이 결코 끝나지 않는다는 것"이라고 말할 때, 그는 사실 지식 생산의 무한 수익 체감 문제를 정확히 짚고 있는 셈이다.
150그루의 과수원: 규모의 경제가 아니라 '다양성의 경제'
Brown 교수의 농장에는 오렌지, 아보카도, 구아바, 복숭아, 사과, 석류 등 다양한 품종의 나무 150그루 이상이 있다. 그는 각 나무가 수분과 영양 공급 면에서 서로 다른 필요를 가진다는 점을 강조한다.
이 구조는 경제학에서 말하는 포트폴리오 다각화(portfolio diversification) 와 정확히 대응한다. 단일 품종 대규모 재배—즉, 규모의 경제를 추구하는 모노컬처 농업—는 수익성은 높을 수 있지만 기후 충격, 병충해, 시장 가격 변동에 극도로 취약하다. 반면 Brown 교수의 150그루짜리 혼합 과수원은 비효율해 보이지만, 리스크 분산 측면에서는 훨씬 탄력적인 구조다.
흥미롭게도 이는 그의 학문적 포트폴리오와도 닮았다. HIV 연구, 공중보건 윤리, 참여자 보상 윤리, 학내 구성원의 숨겨진 도전 과제—이 다양한 연구 주제들은 단일 거대 프로젝트에 올인하지 않는 지적 다각화 전략이다. 최근 미국 내 연방 연구비 삭감(grant terminations) 사태를 언급하며 그가 이 문제를 연구 과제로 삼고 있다는 점은, 이 전략의 현실적 필요성을 방증한다.
기사가 말하지 않는 맥락: AI 시대의 지식 노동자 위기
Nature의 이 시리즈—농사, 재봉, 제빵, '낮과 밤의 과학'—가 2026년 현재 등장하는 타이밍은 우연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 AI가 논문 초안을 쓰고, 데이터를 분석하고, 문헌을 요약하는 시대에, 지식 노동자의 차별화 역량은 어디서 오는가라는 질문이 학계 전반에 조용히 울려 퍼지고 있다.
관련해서 흥미로운 병렬이 있다. Fervo Energy의 지열 IPO가 AI 데이터센터의 '항상 켜져 있는 전력' 수요를 겨냥했듯이, 지식 경제에서도 '항상 켜져 있는 창의성'—즉 끊임없이 새로운 통찰을 생산하는 능력—이 프리미엄 자산으로 재평가받고 있다. 그리고 그 창의성의 원천이 알고리즘이 아니라 과수원 아침 산책에서 비롯된다는 역설이, 이 시리즈의 핵심 메시지다.
TechCrunch가 보도한 Elon Musk의 xAI 미시시피 데이터센터 사례—50대에 가까운 가스 터빈을 환경 규제 허점을 이용해 무검사 운영 중이라는—는 또 다른 각도를 제공한다. AI 인프라가 에너지를 무한정 소비하며 확장하는 동안, 그 AI를 활용할 인간 연구자들의 인지적 에너지는 어떻게 재생될 것인가? Brown 교수의 과수원은 그 질문에 대한 하나의 실험적 답변으로 읽힌다.
농업연구의 경제적 함의: 지식 생산의 '토양'을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
경제학에는 총요소생산성(Total Factor Productivity, TFP) 이라는 개념이 있다. 자본과 노동 투입만으로 설명되지 않는 생산성 증가분—즉, 기술 혁신, 조직 효율, 창의적 아이디어의 기여분이다. 지식 경제에서 TFP의 핵심 원천은 결국 인간의 창의적 사고다.
Brown 교수가 농사를 통해 발견한 것은, 창의적 사고라는 TFP 원천이 구조화된 업무 시간이 아니라 비구조화된 신체 활동 시간에 더 많이 생산된다는 사실이다. 이는 개인의 발견이 아니라, 점점 더 많은 경영학·심리학 연구가 지지하는 명제다. 스탠퍼드대 연구진은 걷기가 창의적 사고를 최대 81% 향상시킨다는 실험 결과를 발표한 바 있다.
"My PhD taught me that the work is never done, and there's always a new research project to pursue, more students to collaborate with, more policies to work on." — Brandon Brown, Nature Careers (2026)
이 발언은 학문적 겸손함처럼 들리지만, 경제학적으로는 지식 생산의 수확 체증(increasing returns) 에 대한 직관적 인식이다. 연구는 연구를 낳고, 협력은 협력을 낳는다. 그 선순환의 연료가 고갈되지 않으려면, 투입되는 인적 자본—즉 연구자 자신—이 지속적으로 재생되어야 한다.
독자가 가져갈 수 있는 관점 전환
이 이야기에서 경제학적으로 의미 있는 시사점은 세 가지다.
첫째, 생산성의 재정의. 시간당 논문 수, 인용 횟수, 연구비 수주액으로만 지식 노동자의 생산성을 측정하는 현행 지표 체계는 TFP의 핵심 원천—창의적 재생—을 포착하지 못한다. 기업과 대학 모두 이 맹점을 직시해야 할 시점이다.
둘째, 포트폴리오 사고의 확장. 투자 포트폴리오를 다각화하듯, 지적·경험적 포트폴리오도 다각화해야 한다. Brown 교수의 150그루 혼합 과수원은 리스크 분산의 은유이자 실천이다.
셋째, '비효율의 효율성'. 농사는 단기 수익률로 보면 명백히 비효율적 시간 사용이다. 그러나 글로벌 금융의 거대한 체스판에서, 장기적 알파(alpha)는 종종 단기적으로 비효율해 보이는 포지션에서 발생한다. 이는 투자자에게도, 연구자에게도, 그리고 정책 입안자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되는 원칙이다.
경제 시스템은 언제나 측정 가능한 것을 최적화하려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가치—창의성, 통찰, 윤리적 판단—는 종종 측정의 바깥에서 자란다. Brown 교수의 과수원이 그것을 조용히, 그러나 분명하게 증명하고 있다. 코요테 울음소리를 자장가 삼아 잠드는 삶이, 어쩌면 지식 경제의 다음 챕터를 위한 가장 합리적인 투자일지도 모른다.
이코노
경제학과 국제금융을 전공한 20년차 경제 칼럼니스트. 글로벌 경제 흐름을 날카롭게 분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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